길위의단상

정치인의 얼굴

샌. 2023. 11. 9. 16:00

우리 지역 국회의원이 이웃에  살아 가끔 길에서 만나는데, 서로 목례를 하며 짧은 인사말 정도는 나눈다. 이분이 처음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지인의 친구여서 짧은 상견례를 가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여서 거리감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때는 인상이 후덕하고 푸근해서 누구에게서나 호감이 간다는 말을 들었다. 당선이 된 데는 그런 이미지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무난한 의정 활동에 재선을 했으니 어느덧 8년이 흘렀다. 그런데 요사이 얼굴은 많이 지치고 찌들어 보였다. 얼마 전에는 뒷산에서 마주쳤는데 표정이 영 말이 아니었다. 미소는 짓지만 얼굴에 배인 어두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8년 전과 비교하면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나 싶었다.

 

이분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정치인이 그런 것 같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처음에는 인상이 좋아서 호감이 간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임기 후반이 되어서는 얼굴에서 읽히는 느낌이 부정적으로 변해서 안타까웠다. 정치판에 오래 발을 담그면 사람의 마음씀이 달라지게 되는 것 같다. 처음부터 못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정치판에서 살아남으려면 독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8년이라면 사람의 얼굴을 충분히 바꾸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꽤 지난 얘기지만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고향 동네의 선배가 느닷없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정치인 뒤를 따라다니는데, 그러다가 시 의원에 출마할 욕심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뒤에 만나서 물어보니 유명 정치인의 컨설턴트 그룹에서 일 한 것일 뿐 선배는 정치할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자신이 만난 정치인들은 우국충정이 대단하다, 라는 것이었다. 정말 그럴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만이 애국자이고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 신념 하나만은 알아줘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성찰 없는 신념은 자신만 아니라 타인과 나라를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 정치인들이 자기 착각이나 기만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최근에 물의를 일으킨 한 운동선수가 자신은 20년 넘게 국가대표로 있으면서 국위 선양에 애썼다고 떳떳하게 말했다. 그 역시 정치인들의 애국 타령만큼이나 듣기가 불편했다. 어느 분야에서 무엇을 하든 덜 당당하고 덜 뻔뻔했으면 싶다.

 

정치인의 변해가는 얼굴을 보면서 정치판이 어떤 곳인지 짐작할 수 있다. 설마 나라 걱정에 노심초사하느라 그렇게 되었다고 변명하지는 않겠지. 나 같은 문외한의 눈에 정치는 권모술수와 아부, 배신, 허언(虛言)이 판치는 곳으로 보인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곧 총선이 다가오는데 정치판이 벌이는 추악한 공연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또 봐야 한다. 옛부터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데 선거는 뜨거운 싸움이니 솔직히 흥미롭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 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해 관심 있게 지켜보는 몇 정치인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낀다. "정치를 하면 이렇게 됩니다." 정치인의 정치 입문 전과 후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선거철의 정치 입문자들이라도 말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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