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해천당 옆에 수백 년 묵은 뒷간 하나 있습니다 거기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문 틈새 이마 위로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목어(木魚) 흔들어 깨우고 가는 청솔 바람소리 보입니다 부스럭 부스럭 누군가 밑 닦는 소리 들리는데 눈 맑은 동박새가 매화 등걸 우듬지에 앉아 두리번 두리번 뭐라고 짖어댑니다 천년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고 새로운 천년이 무섭게 밀려오는지 그 울음소리 대숲 하늘 한 폭 찢어놓고 앞산머리 훠이 날아갑니다 하릴없이 대나무 대롱 끝에 입술을 대고 한 모금 찬물을 삼키다가 옳거니 매화꽃 봉오리 움트는 소리 겨울 산그늘 얼음꽃 깨치고 봄 햇살 걸어오는 것 보았습니다 - 우수(雨水) / 나종영 봄은 언제 시작하는 걸까. 문자대로라면 입춘(立春)이 봄의 시작일 텐데 우리나라에서 2월 초순은 봄이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