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목 8

서울대공원 고사목

나무는 죽어서도 당당하다. 위엄을 잃지 않는다. 사람의 사체는 부패하면서 악취를 풍기지만, 나무는 향기를 낸다. 죽은 몸통은 온갖 곤충과 미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이 된다. 나무는 위대한 존재다. 서울대공원이 있는 자리는 옛날에는 과천면 막계리라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그 마을에 500살이 넘은 느티나무가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추수가 끝나면 이 나무 앞에 떡을 해놓고 제사를 지내며 복을 빌었다. 그런데 1984년에 서울대공원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떠나고 나무만 남게 되었다. 그마저 2010년 여름에 태풍 곤파스로 쓰러져 결국은 죽고 말았다. 지금은 그 형해만 남아 있다.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무엇인가. 나무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의 영혼은 우주를 감싸며 ..

천년의나무 2015.08.18

몰운대 고사목

정선에 있는 몰운대(沒雲臺)는 화암팔경 중 하나다. 하늘 나라 신선이 구름 타고 놀러왔다는 곳이다.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시원하지만, 곧게 정비된 하천과 비닐하우스가 분위기를 반감시킨다. 옛날 시인묵객들이 찾아 감탄했던 풍경은 머릿속에서나 그려볼 뿐이다. 몰운대 바위 끝에 고사목 한 그루가 서 있다. 죽은지 상당히 오래된 소나무 고사목이다. 살아 있을 때도 멋있었겠지만 죽어 형해만 남은 모습은 또 다른 멋이 있다. 죽은 나무는 자신이 자라고 지탱했던 밑의 바위와 색깔이 같아졌다. 나무는 죽은 뒤가 오히려 더 당당하다. 고사목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전해주는 듯 하다. 황동규 시인은 '몰운대행'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1 사람 피해 사람 속에서 혼자 서울에 남아 호프에..

천년의나무 2012.10.27

송암정 고사목

남한산성 동문 부근 산자락에 송암정(松岩亭) 터가 있다. 남쪽으로 청량산 자락과 검단산을 바라보는 풍광이 멋진 곳이다. 우리 같은 시골뜨기가 봐도 정자 하나 들어서면 좋을 장소다. 이곳에는 이런 얘기가 전한다. 옛날에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는데 남자 여럿이 기생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황진이는 희롱도 참아가며 이들에게 불법을 설파했다. 이때 감명을 받은 기생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절벽으로 뛰어내려 자결했는데 그 후 달 밝은 밤이면 이곳에서 노래소리와 통곡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황진이가 금강산을 비롯한 산천을 3년 간 유람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아마 이곳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조금은 억지스러운 전설이다. 송암정이 있던 자리에는 소나무 고사목 한 그루가 서 있다.이 ..

천년의나무 2011.07.30

주흘관 전나무 그루터기

는 죽어서도 그루터기가 되어 피곤한 나그네에게 의자가 되어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죽어서 쓰러진 나무등걸에서 수많은 숲 속의 생명체들이 살아간다. 전체 숲 생물종의 약 30 %가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살아간다는 조사도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되돌려주는 나무의 모습은 차라리 전신공양에 가깝다. 나무가 원래 이타적인 존재인 것은 아니다. 나무도 오직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전체 생태계에 도움이 되며 그와 조화를 이룬다. 그것이 인간과 다른 점이다. 무엇을 도와주려고 하거나 기여하려고 하지 않지만나무의삶은 모든 존재에게 필수불가결이다. 그것이 나무가 아름다운 이유다. 그래서 나무는 죽어서도 아름답다. 문경새재 주흘관 옆에 전나무 그루터기가 보존되어..

천년의나무 2008.11.23

송광사 고향수

송광사(松廣寺)는 신라말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 뒤에 보조국사 지눌스님에 의해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크게 중창되었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송광사는 16국사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해 삼보사찰 가운데서도 승보종찰로 잘 알려져 있다. 현대의 큰스님만 해도 효봉, 취봉, 구산, 일각스님이 송광사에서 나셨다. 송광사 일주문을 지나면 바짝 마른 고목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오는데, 1200년에 보조국사가 송광사에 오셔서 직접 심은 나무라고 한다. 그 이름이 마른 향나무라는 뜻의 고향수(枯香樹)다. 그런데 보조국사가 돌아가시자 이 향나무도 따라 죽었고, 그때부터 스님들은 국사와 나무를 하나로 보고 무척 아꼈다고 한다. 그 까닭에 죽은 나무지만 800년..

천년의나무 2008.02.21

통의동 백송

서울 종로구에 있었던 통의동 백송은 지금은 없다. 한때는 우리나라 백송 중에서 가장 크고(높이 16m, 둘레 5m), 수형이 아름다웠던 나무였으나 1990년 7월에 닥친 태풍으로 넘어져 고사되었다. 지금 그 터에는 죽은 그루터기만이 남아 옛날의 흔적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는 청와대 가까이에 있는 이 나무가 죽는 것은 불길한 징조라 하여 나무를 살려내라고 지시했다 한다. 서울시는 '백송회생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나무가 쓰러진 상태에서 살려내기로 하고 경찰관을 배치하여 보호했다. 다음 해에 새싹이 나는 등 살아날 조짐이 보였으나,누군가가 나무에 제초제을 뿌리는 사고가 생겨 결국 죽었고 1993년 5월에 나무는 잘려 나갔다고 한다. 이 나무의 수령이 600년이었다고 알려져 있..

천년의나무 2007.11.23

청량정사 고사목

봉화 청량산에 있는 청량정사(淸凉精舍)는 송재 이우(1469-1517)가 조카들을 가르쳤던 건물이다. 퇴계 역시 13살 되던 해(1513)에 이곳에서 글을 배웠다. 원이름은 오산당(吾山堂)이었다고 한다. '나의 산'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청량산은 퇴계 가문에 속하는 산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청량산 일대는 퇴계와 인연이 깊다. 청량정사 바로 옆에 고사목 한 그루가 있어 그 옆을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여느 고사목과 달리 몸 전체가 검게 그을려 있어 화마의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불 탄 잔해지만 그 위용만으로도 감탄하게 되는데, 살아있었을 때 모습을 상상해보면 아래에 있는 청량정사와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나무에 불이 난 것이 6.25 때라고 하니까 벌써 50년..

천년의나무 2007.10.31

연주암 고사목

생명을 받은 모든 존재는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무섭고 두렵다. 그것은 죽음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고통과 상실감, 공포 의식 등이 원인일 것이다. 다른 생명들도 인간만큼 죽음을 삶의 대척점으로서 의식하는지는 의문이다. 인간의 죽음은 추하지만, 나무의 죽음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죽은 인간 몸에서는 고약한 악취가 나지만, 썩어가는 나무에서는 숲의 향기가 난다. 그리고 나무를 보면 죽는다는 것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연에 되돌려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에서 받은 것을 온전히 반납하는 것이다. 죽은 나무는 다른 생물들의 삶의 터전이 되며 영양분의 공급원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다른 생명들을 살린다. 나무는 죽어서 다른 생물들의 삶으로 거듭나는것이다. 오랜만에 연주암..

천년의나무 2007.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