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서 2

왕대폿집 / 구중서

수원화성 화홍문 연못가 왕대폿집 벽에 걸린 주전자가 모과처럼 우그러져 막걸리 젖통을 만진 손들을 알만하다 안주도 안 시키고 막걸리만 들이켜는 넝마주의 단골손님 오늘은 안 보이네 그나마 막걸리 값도 마련이 못 되었나 대폿집 주인장이 문밖을 내다본다 리어카 세워놓고 딴 데 보는 단골손님 주인이 불러들이네 공으로 마시라고 - 왕대폿집 / 구중서 10여 년 전 화성에 갔을 때 찍어둔 왕대폿집 사진이 있다. 거꾸로 달린 간판이 특이해서 한참 들여다봤는데 바로 이 시조에 등장하는 왕대폿집이다. 여기 들리는 사람들은 거꾸로 된 간판이 바로 보일 때까지 마셨다나 어쨌다나, 유명한 집인 줄 그때 알았더라면 나도 한 번 들어가 봤을 텐데.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지, 주인장 인심도 그대론지, 언제 화성에 다시 가봐야겠다.

시읽는기쁨 2015.10.12

공상 / 구중서

고향 마을 외진 터에 빈집 하나 있을까 종중 땅에 있던 집 맡아서 들어가 헌 데를 황토로 발라 누울 방을 마련할까 흙 마당 울 밑에 아욱이랑 호박 심고 여기저기 나는 잡초 자라게 버려두고 봉당 위 마루에 앉아 내다보면 좋겠네 뒷산의 어느 골짝 샘솟는데 있으련만 물길을 끌어대면 곡수연 터 되려나 도회의 친우가 오면 술잔을 띄워볼까 - 공상 / 구중서 경안천습지생태공원을 산책하다가 만난 시다. 요사이 내 공상과 닮아 반가웠다.어디 외진 터에 낡은 집이라도 있지 않을까 열심히 두리번거리지만 마음을 당기는 데는 아직 없다.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는 내 앞에 나타나리라. 인적 끊긴 산속에 살다 보면 사람과 사람의 소리가 그리워지기도 할까? 제발 그래 보고 싶다.

시읽는기쁨 2012.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