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 13

경안천 참나리

경안천을 걷는 도중에 길 옆에 핀 참나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줄기 아래쪽에 피었던 참나리는 다 졌고, 지금은 줄기 끝에서 마지막 참나리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참나리마저 지면 여름도 끝에 다다를 것이다. 지난 주말에 온 손주에게 빨강머리 앤 얘기를 해 줬는데 참나리를 보니 빨강머리 앤 생각이 절로 났다. 참나리도 얼굴에 생긴 주근깨 때문에 고민이 많을까. 그러나 겉모양은 절대 그런 것 같지 않다.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마음씨인가. 그런 점에서 참나리와 빨강머리 앤은 닮았다. 빨강머리 앤에게와 마찬가지로 나는 참나리에게도 속삭인다. "고마워, 참나리!"

꽃들의향기 2021.08.04

뒷산 털중나리

꽃이 귀한 뒷산에서는 무슨 꽃이든 반갑다. 그런데 여름 산길을 상징하는 털중나리가 뒷산에도 있다는 걸 이제야 발견했다. 솔직히 말하면 중나리, 털중나리, 말나리 등을 구분할 실력이 나에게는 없다. 각각의 특징을 설명할 걸 봐도 잘 모르겠다. 그저 제일 흔하게 볼 수 있으니 털중나리라고 추정할 뿐이다. 어쨌든 반가운 털중나리다. 당분간은 네가 산길을 걷는 또 하나의 기쁨이 되어 줄 것이다.

꽃들의향기 2021.06.14

강변의 참나리

어린 시절 강가에서 뛰어놀던 내 모습을 참나리는 보고 있었을 게다. 책보 던져놓고 옷 홀라당 벗고 강물로 뛰어들어 놀다 보면 어느새 어스름 저녁이 되었다. 그 강변 어딘가에 참나리는 피어 있었을 테고, 아이들 노는 걸 구경하느라 참나리 고개는 아래로 기울어지지 않았을까. 참나리는 참 당돌하지. 주근깨 얼굴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머리털 뒤로 젖히고 활짝 드러내고 있잖아. 그 당당함이 좋다. 여름을 닮은 뜨거운 색깔은 어떻고. 참나리는 자연의 열정과 순수를 그대로 드러낸다. 참나리 앞에 서면 인간의 가식과 엄살이 부끄럽다. 장맛비도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참나리는 씩씩하게 피어 있다.

꽃들의향기 2019.07.25

털중나리

나리의 계절이 찾아왔다. 꽃이 하늘을 보는 놈도 있고, 땅을 보는 놈도 있다. 중나리는 아마 중간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겠다. 중나리와 털중나리의 차이는 말 그대로 솜털의 유무다. 여름의 초입에 꽃을 피우면 대개 털중나리가 맞다. 이 시기 산길을 걷다 보면 털중나리를 가끔 만난다. 한 개체씩 고독하게 피어 있는 경우가 많다. 초록 세상에서 붉은색 나리는 단연 눈에 띈다. 작은 환성에 산행의 피로가 가신다. 여름 산의 고마운 꽃이다.

꽃들의향기 2017.06.29

남한산성 참나리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남한산성을 산책했다. 숲에서 참나리 가족을 만났다. 참나리는 우리나라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다. 들이나 숲, 강가 등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강렬한 색상이 여름의 뜨거운 정열을 잘 보여준다. 발랑 뒤로 젖혀진 꽃잎이며 유난히 길게 자랑스레 내뻗은 수술과 암술이 완전 도발적이다. 또, 참나리는 다른 풀꽃과 달리 키가 커서 고개를 쳐들고 봐야 한다. 참나리의 매력은 도도하고 당당한 데 있다.

꽃들의향기 2013.07.31

하늘나리

진홍의 색깔이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빳빳이 세운 자세가 당돌하기 그지없다. 겸손의 미덕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활짝 핀 하늘나리에서는 당당한젊은 여성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나를 유혹해 봐!"라며 젊잖은 하늘에게까지 요염한 자태로 도전한다. 하늘나리는 나리 종류 중에서도 꽃이 가장 빨리 핀다. 지금은 벌써 지고 없다. 하늘말나리와 꽃은 비슷하지만 잎이 어긋나는 것이 다르다. 한강공원에 하늘나리 꽃밭이 있어서 올해는 며칠동안 푸짐하게 구경했다. 개인적으로는 나리 중에서 솔나리가 가장 예쁘다. 언젠가 강화도 전등사에서 솔나리를 만났었는데 그 뒤로는 볼 기회가 없었다. 귀하니 그만큼 더욱 보고 싶은가 보다. 하늘나리를 보면서 솔나리를 마음에 품고 있으니 하늘나리가 알면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

꽃들의향기 2009.06.30

하늘말나리

하늘말나리는 꽃잎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마치 하늘을 향해 펼쳐진 안테나와 같다. 그래서 마치 하늘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말나리는 여름의 흰 구름을 무척 사모하는가 보다. 생물학적으로는 이런 자세에 대해 설명하는 이론이 있을 것이다. 아마위쪽을 날아가는 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는 이런 모습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도 같다. 하늘말나리를 보면 꽃의 색깔이나 모양 하나하나에도 번식을 위한 독특한 진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은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경쟁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결코 어느 한 종의 지배나 전횡이 용납되지 않는다. 큰 것과 작은 것 사이의 조화로운 공존이 아름다운 자연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고유의 ..

꽃들의향기 2006.08.04

참나리

참나리는 고향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여름이면 마을 앞 강가에 나가 홀딱 벗고 물장난 치며 노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었다. 여름이면 그 강가에 참나리가 피어났다. 초록 벌판에 키 큰 진홍빛 참나리는 강렬한 인상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당시에는 들꽃에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겠지만 그래도 여름의 내 유년은 참나리가 늘 배경으로 등장한다. 참나리는 색깔 뿐만 아니라 발랑 뒤로 젖혀진 꽃잎이 매우 도전적이고 유혹적이다. 여름의 뜨거운 정열을 대표하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꽃잎에 새겨진 까만 반점은 사람에 비유하면 주근깨 가득한 얼굴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참나리를 보면 당당하고 개성이 강하면서도 화려하게 장식한 여인이 연상된다.

꽃들의향기 2006.07.31

솔나리

나리는 여름 꽃이다. 나리는 종류가 많은데 다들 예쁜 이름들을 갖고 있다. 참나리, 노랑참나리, 솔나리, 흰솔나리, 검솔나리, 하늘나리, 날개하늘나리, 땅나리, 노랑땅나리, 중나리, 털중나리, 말나리, 섬말나리, 하늘말나리..... 죽기 전에 이 나리들을 다 만나볼 수 있다면 무척 행복하겠다. 나에게도 아직 가능성이 있으니까 기대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최근에 솔나리를 두 번이나 만났다. 강화도 전등사와 가평에 있는 '꽃무지 풀무지'라는 수목원에서였다. 솔나리는 나리 중에서도 아름답기가 으뜸이다. 옅은 분홍빛의 작은 꽃은 가여리고 청초한 분위기를 풍긴다. 또 순수하고 귀엽다. 잎이 솔잎처럼 가늘다고 해서 솔나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희귀식물로 지정된 종이어서인지 야생 상태로는 거의 보기가 힘들다...

꽃들의향기 2005.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