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부여 6

주암리 은행나무

부여에서 대천으로 가다가 우연히 도로 옆 안내판을 보고 찾아간 나무다.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에 있는 은행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 옆 정자에서 홀로 쉬고 있는 할아버지한테서 나무의 내력을 들어볼 수 있었다. 지금은 넓은 공터로 되어 있지만 몇 해 전까지도 나무 바로 밑에 민가의 지붕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이 영목으로 받드는 은행나무라면서 몇 가지 일화를 들려주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기면 나무도 상처를 입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던 밤에 큰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이 나무의 큰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당신이 직접 보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할아버지는 이 은행나무가 수령이 1,500년이나 된 우리나라 최고령 은행나무로 믿고 있었다. 전설에는 백제의 사비 천도를 전후하여..

천년의나무 2017.07.29

홍산객사 은행나무

홍산(鴻山) 객사는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에 있다. 객사(客舍)란 관청의 손님이나 사신이 유숙하던 건물이다. 1838년에 재건한 홍산 객사는 가운데에 정당을 두고 좌우에 익실을 붙였다. 동쪽 익실은 대청마루이고, 서쪽 익실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수령이 700여 년인 이 은행나무는 홍산객사 안에 있다. 나무 높이는 15m이고, 줄기 둘레는 7.5m다. 마을의 정자나무이기도 한데 재난이나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울기도 하고 불빛이 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정월 초하룻날에 제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는데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천년의나무 2017.07.27

대조사 소나무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대조사(大鳥寺)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미륵불이 있다. 신체 비례가 어울리지 않고, 조각 기법이 세련되지 않은 점 등이 이 지방의 미륵신앙을 잘 보여주는 석불이다. 세련되지는 않아도 사바세계로부터 구원을 바라는 민초의 염원을 표상하는 모습이다. 이 미륵불 옆에는 바위 틈에서 자라난 노송이 있다. 앞에서 보면 마치 미륵불을 감싸듯 보호하는 모양새다. 수령이 300여 년 정도이고, 나무 높이는 15m, 줄기 둘레는 1.5m다. 그런데 3년 전 폭설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미륵불의 보관을 때려서 파손 되었다고 한다. 지금 원형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미륵불 쪽으로 방향을 튼 소나무의 선한 의도는 오로지 인간의 해석일 뿐인가, 아니면 더 깊은 뜻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년의나무 2017.07.25

임천관아터 소나무

부여군에 있는 임천면(林川面)은 지금은 비록 작은 시골 면이지만 옛날에는 번성한 고을이었다. 백제 때는 가림군(嘉林郡)으로 불리웠고, 고려 때는 자사(刺史)가 파견될 정도로 중심지였다. 또 조선 초기에는 부(府)로 승격되기도 했다. 옛날 관아가 있던 터는 지금 면사무소와 초등학교로 변해 있다. 그 관아터에 소나무 한 그루만이 남아 옛 흔적을 지키고 있다. 수령은 300 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 맵시가 참 예쁘다.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막 내려앉는 모습 같다. 관아 중에서도 어딘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참한 소나무를 앉혀두고 일을 보았다면 분명 선정을 베풀지 않았을까. 요사이 지자체에서 호화 청사를 짓는다고 난리들인데 건물보다는 차라리 이런 나무 기를 욕심을내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천년의나무 2010.07.14

성흥산성 느티나무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성흥산성(聖興山城)은 백제 동성왕 23년(501)에 축조된 성이다. 옛 이름은 가림성(加林城)이었다. 부여 남쪽에 있는데 사비로 천도하기 37년 전에 만들어졌으니 아마 남쪽에서 웅진으로 침투하는 적을 막기 위한 방어진지였을 것이다. 이 성흥산성 남문터에 멋진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이 400년 정도 된 고목인데 잘 생겼고 늠름하다. 정자나무로서의 느티나무는 대개 마을 입구나 한가운데에 있는데 250 m나 되는 산 정상부에 이렇게 크고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주위에 다른 높은 산이 없다보니 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이 나무만이 독야청청하다. 때를 잘 맞춘다면 멋진 사진작품을 만들 수 있는 나무라고 생각된다. 백제 산성이라는 이미지라면 늦가을이나 겨울이 적당하지 않을까. 그..

천년의나무 2010.07.09

낙화암 천년송

낙화암에 서서 서기 660년의 현장을 상상해 본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나라가 무너지자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부소산 뒤쪽으로 쫓기다가 절벽과 마주친다. 더 이상 도망갈 길도 없다. 여인들은 치마를 뒤집어쓰고 백마강으로 꽃이 되어 떨어진다. 한순간에 이곳은 눈물과 한숨, 통곡과 비명이 뒤섞인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 백마강은 붉은 피와 서러운 꽃잎으로 가득 덮였으리라. 그때로부터 1350년이 흘렀고, 사람들은 대를 이어 나고 죽었으며, 강물도 쉼 없이 흘렀다. 부소산의 나무들도 나고 죽고를 거듭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 후세 사람들이 백제 여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낙화암 바위 위에 백화정(百花亭)을 지었다. 전설대로라면 천화정, 만화정이 되어야 할 텐데 오히려 소박한 이름이 백제인의 마음을 닮은듯하여 반갑..

천년의나무 201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