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8

오래된 생각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년 5월에 고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서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고뇌 속 한 인간이 남긴 마지막 말에 가슴이 짠해진다. 이 책은 대통령을 옆에서 모신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소설 형식을 빌려 쓴 노 대통령에 대한 회고 기록이다. 은 기득권 세력만 아니라 여권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한 고독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말대로 육백 년 기회주의 역사를 청산하겠다고 대통령..

읽고본느낌 2022.05.02

노무현과 문재인

10여 년 전 노무현 정부 때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을 포함해 정책 입안자 상당수가 당시의 아픈 체험을 겪었을 텐데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듯하여 안타깝다. 서울 아파트값이 폭등하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고 나서야 대책이라고 내놓고 있다. 사후약방문이다. 이런 즉흥적 처방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은 설마 아니겠지.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 때려잡겠다고 얼마나 큰소리를 쳤는가. 그러나 시장은 콧방귀도 안 뀌었다. 그런 데서 뭔가를 배웠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가격 폭등의 쓰린 과거를 갖고 있다. 서울 집을 처분하고 시골로 내려간 건 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믿은 일면도 있었다. 시골에 잘 정착했으면 서울 집값이 오르든 말든 ..

길위의단상 2018.09.14

김해

친지의 결혼식 참석차 김해에 간 길에 아내와 함께 봉하마을에 들렀다. 두 번째였는데 이번에는 부엉이바위로 해서 사자바위 전망대까지 다녀왔다. 휴일이었다 해도 방문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주차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다. 사자바위에 올라보니 봉하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포근하고 넉넉해 보이는 마을이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부엉이바위로는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었다. 꼭 그래야만 했나요? 그때의 MB는 지금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있다. 계속 반복되는 역사의 쳇바퀴가 답답하다. 김해 시내에 있는 수로왕릉에도 들렀다. 김해 김씨의 시조인 탓인지 결혼식을 마친 한 무리의 가족이 신랑 ..

사진속일상 2018.02.27

운명 / 도종환

당신 거기서도 보이십니까 산산조각난 당신의 운명을 넘겨받아 치열한 희망으로 바꿔온 그 순간을 순간의 발자욱들이 보이십니까 당신 거기서도 들리십니까 송곳에 찔린 듯 아프던 통증의 날들 그 하루하루를 간절함으로 바꾸며 이겨낸 승리 수만마리 새 떼들 날아오르는 날갯짓 같은 환호와 함성 들리십니까 당신이 이겼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당신 때문에 오래 아팠습니다 당신 떠나신 뒤로 야만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어디에도 담아둘 수 없는 슬픔 어디에도 불지를 수 없는 분노 촛농처럼 살에 떨어지는 뜨거운 아픔을 노여움 대신 열망으로 혐오 대신 절박함으로 바꾸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해마다 오월이 오면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지는 오월이 오면 나뭇잎처럼 떨리며 이면을 드러내는 상처 우리도 벼랑 끝에 우리 운명을 세워두고 했다는 걸..

시읽는기쁨 2017.06.04

봉하마을

김해 요양원에 계신 이모를 뵙고 봉하마을을 찾아갔다. 봉하는 평범한 농촌 마을인데 산에 박힌 사자바위와 부엉이바위가 인상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는 두 바위 아래에 있었다. 당신이 바라본 방향과 가치관에는 동감했지만, 재임시 당신이 편 정책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바도 있었지요. 개인적으로 애증이 교차하는 대통령이었고, 진보의 희망이었지만 좌절하는 진보의 단초가 되기도 했던 당신이었습니다. 꼭 그래야만 했나요? '민중은 개돼지'라는 교육부 고위관료의 뻔뻔한 발언을 접하는 요즈음, 천둥 같은 당신의 목소리가 자꾸 그립습니다.

사진속일상 2016.07.11

[펌] 노무현을 위한 변명이 아니다

난 그 흔한 노빠도 아니고 좌빨도 아니다. 그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며 전쟁보다는 평화를 바라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30대 청춘이다. 김영삼보다 김대중이 좀 더 똑똑해 보여 찍었고 수구꼴통이란 닉네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나라당이 싫어서 김대중을 찍었고 이회창보다는 노무현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좀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해서 그에게 표를 줬을 뿐이다. 저번 대선에도, 그래도 대통령인데 애초부터 도덕성이 결여된 수준 이하의 후보에게 차마 표를 줄 수 없어 어쩔수 없이 정동영을 찍었던 그런 힘없는 백성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보고 있노라면 막장드라마도 울고 갈 굵직굵직한 미니시리즈들이 씌여지고 있는 듯하다. 본시 막장드라마일수록 결과는 뻔한데 하루하루 놓치기 아까운 ..

길위의단상 2009.05.03

대통령의 말

대통령의 말이 또 회자되고 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보수언론이나 사람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언론은 대통령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듯 사사건건 말꼬리 잡듯이 사설과 칼럼을 통해 모욕적인 언사조차 서슴치 않고 있고, 일반인들도 TV에 나온 몇 초의 문제되는 장면만 보고는 비난 일변도다. 대통령이 욕먹고 있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너무 심하다 싶은 심정은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도대체 어떤 발언이었는지 인터넷 동영상으로 1시간 8분에 이르는 연설을 전부 들어 보았다.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한 연설인데 위원들의 질문이나 건의사항에 답하는 형식으로 주로 안보, 국방에 대한 대통령의 소신을 밝힌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군데군데 문제의 발언이 섞여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은 외교안보를 중심으로 한 국정 ..

길위의단상 2006.12.25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타는 목마름으..

시읽는기쁨 200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