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 4

무심하게 산다

제목에 끌려 고른 책이다. 가쿠타 미쓰요(角田光代)라는 일본 작가의 에세이로, 제목을 봤을 때는 작가가 노년이 아닐까 싶었는데 1967생이다. 책에 실린 글은 대개 40대 중후반에 썼다. 무심하게 산다고 하기에는 젊은 나이다. 작가 자신의 몸에 대한 관찰이 주된 내용이다. 나이을 먹어감에 따라 생기는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일본 여성 특유의 감성이 살아 있다.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아마 여자라면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의 원제가 인데 '나란 사람을 담는 그릇' 쯤으로 해석되는가 보다. 그릇은 몸이지만 그 내용물은 성질이나 성격이어서 나이가 들면서 변해가는, 또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성향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읽고본느낌 2021.08.23

소의 무심

지난달에는 긴 장마와 폭우로 비 피해가 컸다. 그때 떠내려간 소가 20일 만에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뒷산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 올라가 보니 멀리 합천에서 기르던 소였다고 한다. 어떤 소는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바다 가운데 무인도에서 찾아낸 소도 있었다. 소는 몸 구조상 부력이 커서 물에 잘 뜬다고 한다. 그리고 성질이 공격적이지 않아 물살에 순응하며 떠내려가기 때문에 오래 생존할 수 있는 반면, 말은 물살을 거슬려 오르려 발버둥치다가 힘이 빠져 빨리 죽는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제 성질을 못 이겨 수명을 재촉한다. 소의 생존 비결에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소를 한 마리씩 키웠다. 농기계가 없던 때라 농사를 짓기 위..

참살이의꿈 2020.09.03

무심천 / 도종환

한세상 사는 동안 가장 버리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욕심이라서 인연이라서 그 끈 떨쳐버릴 수 없어 괴로울 때 이 물의 끝까지 함께 따라가 보시게 흐르고 흘러 물의 끝에서 문득 노을이 앞을 막아서는 저물 무렵 그토록 괴로워하던 것의 실체를 꺼내 물 한 자락에 씻어 헹구어 볼 수 있다면 이 세상 사는 동안엔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어긋나고 어긋나는 사랑의 매듭 다 풀어 물살에 주고 달맞이꽃 속에서 서서 흔들리다 돌아보시게 돌아서는 텅 빈 가슴으로 바람 한 줄기 서늘히 다가와 몸을 감거든 어찌하여 이 물이 그토록 오랜 세월 무심히 흘러오고 흘러갔는지 알게 될지니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마음을 무심이라 하나니 욕심을 다 버린 뒤 저녁 하늘처럼 넓어진 마음 무심이라 하나니 다 비워 고요히 깊어지는 마음을 무심이라 하..

시읽는기쁨 2018.12.20

텅 빈 나 / 오세영

나는 참 수많은 강을 건넜습니다 강을 건널 때마다 거기엔 이별이 있었고 이별을 가질 때마다 나는 하나씩 내 소중한 것을 내주었습니다 헤엄쳐 건너면서 옷을 벗어주었습니다 뗏목으로 건너면서 보석들을 주었습니다 배로 건너면서 마지막 남은 동전조차 주어버렸습니다 나는 참 수많은 산들을 넘었습니다 산을 넘을 때마다 거기엔 이별이 있었고 이별을 가질 때마다 나는 하나씩 내 소중한 것들을 건네주었습니다 벼랑에 매달리면서 슬픔을 주었습니다 비탈에 오르면서 기쁨을 주었습니다 고개를 넘으면서는 마침내 당신에 대한 그리움까지도 주어버렸습니다 나는 참 수많은 산과 강을 넘고 건너왔기에 내겐 이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더불어 당신께 드릴 것이 없습니다 나는 텅 비어 있으므로 지금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무래도 나는 이제 아..

시읽는기쁨 2007.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