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무심하게 산다

샌. 2021. 8. 23. 11:17

제목에 끌려 고른 책이다. 가쿠타 미쓰요(角田光代)라는 일본 작가의 에세이로, 제목을 봤을 때는 작가가 노년이 아닐까 싶었는데 1967생이다. 책에 실린 글은 대개 40대 중후반에 썼다. 무심하게 산다고 하기에는 젊은 나이다.

 

작가 자신의 몸에 대한 관찰이 주된 내용이다. 나이을 먹어감에 따라 생기는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일본 여성 특유의 감성이 살아 있다.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아마 여자라면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심하게 산다>의 원제가 <わたしの容れもの>인데 '나란 사람을 담는 그릇' 쯤으로 해석되는가 보다. 그릇은 몸이지만 그 내용물은 성질이나 성격이어서 나이가 들면서 변해가는, 또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성향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진다고 믿었는데, 자신이나 주변을 보며 그런 생각이 무너졌다고 한다. 이것은 누구나 동감하는 부분인 것 같다.

 

작가는 나이가 들면 인간적 결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결점을 없애려하기보다는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삶을 깨우치거나 현명해지려는 불가능한 목표에 매달리지 말고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정말 중요하고 적확한 지적이다.

 

'굳어져 가는 내면'이라는 글 일부를 옮긴다.

 

사람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아지지만은 않는다. 매사에 동요하지 않게 되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건넬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지혜로워진다고도 똑똑해진다고도 할 수 없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갈수록 더 급해지고, 불같은 사람은 갈수록 더 불같아지는 등 대부분 내면의 그릇이 작아진다. 너그러워 보일 때도 있지만 그것은 그 사실을 인정해서라기보다도 아무래도 상관 없어서, 즉 무관심해서다.

굳이 따지자면 장점보다 단점이 갈수록 더해가는 느낌도 든다. 물론 장점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단점이 돌출되면서 장점이 눈에 띄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점이라고 해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성미가 급하거나 눈에 띄고 싶어 한다거나, 타인에게 무심하거나 건망증이 심하다거나, 썰렁한 농담을 던져야 직성이 풀리거나 자랑하기를 좋아한다거나 참을성이 부족한 등 별 문제될 것 없는, 우리 안에도 충분히 자그맣게 자리잡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 이와 같은 소소한 단점은 우리 내면에도 자잘하게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이 별안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우리는 늘 주의를 기울인다. 너무 조급하게 굴면 다른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다거나, "내가 말이야" 하는 이야기를 꼴 사나워 보일 수 있다거나, 주문하고 나서 요리가 2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일 정도로 화를 벌컥 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자제하고 있다. 아마도 40대인 나보다 30대가 자제하고자 하는 마음이 훨씬 강할지도 모른다. 20대는 어쩌면 그러한 결점들에 아직은 눈을 뜨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삶은 분명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일이지만 경험을 현명해진다기보다 경험함으로써 '자제하지 않아도 무탈하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요리를 오래 하다 보면 어느 과정을 생략해도 되는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건 결점을 없애려 들기보다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결점이 얼굴을 드러낸 오랜 친구들은 다들 하나같이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목소리가 크든 아무리 제멋대로 굴든 아무리 자기애가 강하든 미워할 수가 없다. 더구나 그런 부분이 그 사람의 본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흔이 넘어서도 목청을 한껏 높여서는 "나야 잘 알지"라고 자꾸만 말하는 것이, 예순이 지나서도 "주문한 와인이 너무 늦는데 어떻게 말 좀 해봐"라고 5분에 한 번꼴로 재촉하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 '미워할 수 없는 마법' 덕분에 그들은 이렇게도 다양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신들의 매력적인 단점을 무럭무럭 키워나가고 있다.

3월에 또다시 한 살을 더 먹은 나도 앞으로 점점 자제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나가게 될 것이다. 자신의 결점이 이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자각하고 있다. 결점을 없애거나 극복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리다. 그러니 목표를 삼아야 하는 것은 삶을 깨우치거나 현명해지려는 것보다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0) 2021.09.16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0) 2021.09.01
찌질한 위인전  (0) 2021.08.19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0) 2021.08.07
마지막 차르  (0) 2021.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