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는 한수산 작가의 글이다. 소설이 아닌 산문집이지만 작가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에서 젊은 시절에 읽었던 작품이 떠올랐다. 벌써 40년 전으로 서커스단원들의 애환을 다룬 <부초>가 제일 기억난다.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은 이제 70대가 된 작가가 과거를 향해가는 추억 여행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 스승들에 대한 추억, 잊지 못하는 장소 등의 이야기가 애조 띤 문장으로 펼쳐진다. 시간 속에서 덧없이 흘러가고 소멸하는 인간의 삶이지만, 돌아보면 노을이 아름다웠던 아침과 저녁도 있었다. 삶의 신산을 겪은 사람의 눈에 비친 노을은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한수산 작가 하면 먼저 '한수산 필화사건'이 생각난다. 1981년에 신문 연재소설에 쓰인 구절을 문제 삼아 작가와 관련자에게 모진 고문을 가한 사건이다. 그 일로 박정만 시인은 폐인이 되고 죽음까지 맞았다. 직접 당사자인 작가의 고초는 오죽했겠는가. 제주에 살던 작가는 보안사(노태우 사령관)에 끌려가 처절한 가혹행위를 당하고 가족에게 돌아왔다. 전기고문으로 타버린 온몸은 가지처럼 검붉은 보랏빛이 되어 있었다 한다. 작가는 그 시절을 이렇게 썼다.
"전기고문을 받아 온몸이 가짓빛으로 탄 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찾아온 정신착란은, 몇 십 년을 건너온 지금 와서 생각해도 공포 그것이었다. 뒤에 아무도 없는데도 '지금 뭐라고 했어?' 하며 고개를 돌려 아내를 찾지 않나, 한밤에 잠에서 깨어나 '비가 쏟아지는데 거실 창문을 열어놓고 자다니!' 하면서 뛰어나가질 않나, 사흘에 두 갑 정도를 피던 담배가 하루에 세 갑으로 늘어난 것이 그때였다. 불안에 시달리는 강박관념이 가져온 가련함이었다...
집이 있었지만 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잃었고, 밥이 있었지만 이미 생명의 찬란함을 잃어버린 몸이었다. 추상명사를 읽어버린 몸은 그랬다. 무엇보다도 나는 사람이 무서웠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그 순간부터 몸이 떨리는, 감당하기 힘든 대인공포증에 시달리며 내가 사람을 피해 찾아가곤 했던 곳이 바로 집 가까운 곳에 자리한 이호해수욕장, 텅 비어서 물결소리만 가득한 철 지난 바닷가였다. 한밤의 이호해수욕장은 참혹하도록 어두웠다. 검은 물결이 와 부딪치는 모래밭을 후벼 파면서 울부짖던 그 수많은 밤들. 새벽녘 집으로 돌아와 몸을 씻으면 내 몸에 묻었던 모래들이 샤워기의 물줄기를 타고 마치 불개미들처럼 줄을 만들면서 욕조바닥을 흘러갔다. 견뎌야 한다고,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야 하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흐느끼던 그 새벽."
작가는 가톨릭 신앙이 내면화되어 있는 것 같다. 책 후반부에는 수녀님께 보내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 보인다. 글 마지막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문이다.
'작가의 말'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늙어가면서 서글퍼지는 일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켜온 것을 보호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결코 짓밟혀서는 안 되는 인간으로서의 자존, 끝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찾아 헤맸던 자유, 힘없는 한 사람으로서나마 그 속에서 살고 싶은 정의로운 사회 그리고 함께하는 가족까지도, 결코 물러설 수 없었던 그 모든 가치를 지켜내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회오의 나날이 깊어간다. 늙음이 주는 슬픔이고 살아낸 지난날이 주는 형벌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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