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샌. 2021. 9. 16. 11:29

 

9/11 테러가 일어난 지 20년이 지났다. 며칠 전에 그라운드 제로에서 추도식이 열리는 뉴스를 봤다. 21세기에 접어들자마자 발생한 이 미증유의 테러로 미국만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여객기가 무역센터에 충돌하고 이어서 건물이 붕괴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모골이 송연하다.

 

최근에 넷플릭스에 나온 다큐멘터리 드라마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Turning Point: 9/11 and the War on Terror)'은 테러가 일어난 배경과 미국의 보복 과정을 복기하듯 보여준다. 사건에 관여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9/11과 이후 경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실성 높은 다큐멘터리다.

 

발단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 미국은 반군을 지원하면서 무장 세력을 키우는데 알 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도 이때 등장한다. 1989년에 소련이 철수하지만 이들은 반제국주의 투쟁을 하면서 대미 항전을 선언한다. 9/11의 씨앗이 발아하는 조건이 소련에 의해 만들어진 셈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이 물러가고 탈레반이 공포 정치를 펼치면서 알 카에다를 비롯한 테러 단체를 음양으로 지원한다. 1993년의 무역센터 폭탄 테러. 아프리카에 있는 미 대사관 공격, 걸프만에서 미국 군함 피격 등이 연이어 일어난다. 그리고 급기야는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에 있는 무역센터와 펜타곤을 여객기로 공격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졌다. 테러범 19명이 네 대의 여객기를 납치해서 그중 세 대가 목표물에 명중했고 2,400여 명이 사망했다.

 

대규모 테러에 대한 경고가 있었지만 CIA와 FBI 사이에 정보 소통이 안 되는 바람에 테러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은 즉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보복 작전에 나섰다. 의회는 부시에게 전권을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북부연합군이 2001년 11월에 탈레반을 몰아내고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미국은 테러에 관련된 자들을 체포하여 관타나모에 수용했는데, 이때 수감자들에게 가한 고문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1년에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

 

2003년에 부시는 이라크를 침공하여 눈엣가시인 후세인을 제거했다. 테러에 사용될 대량살상무기를 없앤다는 명분이었지만 그런 무기는 없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동시에 전쟁을 벌인 건 미국의 실책이었다. 막대한 전비와 인명을 희생시키면서 현지인의 민심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무모한 침공은 도리어 미국에 대한 반감을 높였을 뿐이었다. 얼마 전에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순식간에 카불이 탈레반에 점령당하며 대혼란이 일어났다. 미국이 공을 들인 아프가니스탄의 30만 정규군은 아무 힘도 쓰지 못했다. 고작 6만의 탈레반한테 추풍낙엽처럼 무너졌다. 미국은 종교의 힘을 너무 간과했는지 모른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20년 동안 싸웠지만 결과는 얻은 것이 없다. 아프가니스탄에는 다시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며 이슬람 근본주의가 돌아왔다. 증오와 복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는 데 너무 큰 희생이 따랐다. 작년에 트럼프와 탈레반이 맺은 평화협정의 결과라고 하지만 들어갈 때에 비해 나올 때의 행색은 초라했다.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은 9/11 테러부터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까지를 시대순으로 보여주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짚어준다. 9/11 테러를 중심으로 현대사를 살피는데 도움이 되는 다큐멘터리다. 9/11 테러가 역사의 한 '터닝 포인트'겠지만, 진정한 터닝 포인트가 되려면 인식의 전환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증오와 무력으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이는 미국만 아니라 이슬람 세계에도 함께 적용되는 원리일 것이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징어 게임  (0) 2021.09.28
다읽(12) -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0) 2021.09.24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0) 2021.09.01
무심하게 산다  (0) 2021.08.23
찌질한 위인전  (0) 2021.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