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4

한티재 하늘

책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가슴이 멨고 눈물이 흘렀다. 권정생 선생이 어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서럽고 고달팠던 우리네 백성들 삶의 이야기다. 먼 옛날도 아니다. 불과 100년 전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외할머니가 떠올라서 더욱 그랬다. 외할머니의 일생 역시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 중 하나와 다르지 않았다. 청상과부가 된 뒤 새끼와 외손주를 키우느라 어느 곳 하나 뿌리 내리지 못하고 전전하며 사셨다. 그나마 배를 곯지 않은 것만은 다행이었다. 은 권정생 선생이 쓰신 두 권으로 된 장편소설이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 경북의 안동과 영양 지역이 무대다. 이리저리 짓밟힌 우리 선조들의 서러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느낌을 전할 수는 없다. 직접 읽어봐야 한다. 그런데 내용이 완결되지 않은..

읽고본느낌 2017.09.10

우리나라 풀 이름을 위한 서시 / 윤주상

우리나라 풀 이름들 외고 있으면 씨감자로 배를 채운 저녁나절처럼 왜 그렇게 속이 쓰리고 아려오는지 쥐오줌풀, 말똥가리풀, 쇠뜨기풀, 개구리발톱, 개쓴풀, 개통발, 개차즈기, 개씀바귀, 구리때, 까마중이, 쑥부쟁이, 앉은뱅이, 개자리, 애기똥풀, 비짜루, 질경이, 엉겅퀴, 말똥비름풀..... 왜 그렇게 하나같이 못나고 천박하고 상스러운 이름들뿐인지 며느리밑씻개풀, 쉽싸리, 개불알풀, 벌깨덩굴, 기생초, 깽깽이풀, 소루쟁이, 쇠비름, 실망초, 도둑놈각시풀, 가래, 누린내풀, 쥐털이슬, 쑥패랭이, 논냉이, 소경불알, 개망초, 색비름풀..... 왜들 그렇게 모두가 하나같이 낯뜨겁고 부끄러운 이름들뿐인지 쥐꼬리망초, 명주실풀, 며느리밥풀, 좁쌀풀, 속속이풀, 송장풀, 주름잎, 쐐기풀, 쑥부지깽이, 개밥풀, 겨우살..

시읽는기쁨 2016.08.02

민중은 개돼지

교육부의 한 고위직 공무원이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했다가 공분을 샀고, 결국은 파면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실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민중은 개돼지로 먹고살게만 해 주면 된다." "신분제는 공고화되어야 한다." 기자와의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극적인 말이었다. 내가 이번 사건을 두려워하는 건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이런 정서가 보편적이지 않을까, 라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되는 문제의 근본에는 엘리트주의가 깔려 있다. 1%의 엘리트가 99%의 민중을 먹여 살린다는 개념이 암암리에 작동하고 있다. 동시에 99%의 민중은 어리석다는 것이 기본 인식이다. 이미 계급사회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돼지' 발언은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

길위의단상 2016.07.17

민중의 세계사

누가 일곱 개의 성문이 있는 테베를 세웠는가? 책에서 그대는 왕들의 이름을 발견한다네. 왕들이 바위 덩어리를 끌어 날랐는가? 그리고 몇 번이고 파괴된 바빌론, 누가 바빌론을 몇 번이고 일으켜 세웠는가? 건설 노동자들은 금으로 번쩍이는 리마의 어느 집에 살았는가? 만리장성이 완성되던 날 밤에 석공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위대한 로마는 개선문으로 가득 차 있다네. 누가 그것들을 세웠는가? 시저는 누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는가? 수많은 찬양을 받은 비잔티움, 그곳에 있던 것은 궁전뿐이었는가? 전설의 아트란티스에서조차 대양이 도시를 삼켜버린 날 밤에 사람들은 물에 빠져서도 자기 노예들한테 고함치고 있었다네. 청년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네. 그는 혼자였는가? 시저는 갈리아 사람들을 무찔렀다네. 그의 옆에는 요..

읽고본느낌 200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