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7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선운사에서 / 최영미 시인은 한 사랑을 떠나보내고 선운사를 찾았는지 모른다. 아마 그때가 4월쯤 되었을까, 뚝뚝 떨어진 선운사 동백꽃을 보았을 것이다. 사랑은 아름답게 꽃을 피웠다가어느 날 떠나갔다. 꽃이 피면 지는 게 자연의 섭리이듯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다. 그걸 모를 리 없건만 서운하고 아쉬운 건 어찌할 수 없다. 그대가 어찌 꽃이 지듯 쉽게 잊히겠는가. 이 시를 읽으면 왜 그런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떠오른다. 소월의..

시읽는기쁨 2012.03.07

선운사 꽃무릇

선운사 꽃무릇은 제 때에 본 적이 없다. 꼭 몇 박자씩 늦는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90% 이상이 져버렸다. 매표소 옆에 있는 꽃밭이 그나마 화려한 뒤태를 보여준다. 절을 지나면서부터는 거의 전멸이다. 어쩌다 성한 송이가 보이면 감지덕지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다. 내년에는 꼭 절정기에 만나고 싶다. 고창 선운사 꽃무릇은 9월 20일 전후에 불이 붙는다.

꽃들의향기 2011.10.05

도솔암 마애석불 소나무

고창 선운산 도솔암에 있는 마애석불 앞에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반송의 한 종류로 미끈하게 큰 키가 눈길을 끄는데 자세히 보면 나무가 많이 상해 있다. 줄기 두 개는 중간에서 꺾여졌고 나무 크기에 비해 솔잎도 초라하다. 나무의 생육조건이 좋을 법하건만 왠일인지 상채기 투성이다. 그 사연을 모르는 나그네로서는 마애석불에 얽힌 옛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마애석불의배꼽에는 검단(黔丹) 스님이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이있다. 조선말에 전라도 관찰사였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런데 동학농민전쟁 당시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미륵의 출현을기다리는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결을 꺼내가는 사..

천년의나무 2009.04.29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

선운사를 지나 도솔암으로 가는 길은 부드럽고 따스하다. 맑고 착한 산길이다. 어떤 길은 두 번째 찾으면 식상해지기도 하는데 이 길은 늘 느낌이 새로우면서 포근하다. 고창에 간 길에 그 길을 다시 걸었다. 어느 시인이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을 이렇게 노래했다. 만약 어느 여자에게 이처럼 아름다운 숲속 길이 있다면 난 그녀와 살림을, 다시 차리겠네 개울이 오묘한 그녀에게 소리가 나는 자갈길을 깔아주고 군데군데 돌무덤을 예쁘게 쌓겠네 아침이면 노란 새소리로 풀꽃들을 깨우고 낮에는 이깔나무 잎으로 하늘을 경작하다가 천마봉 노을로 저녁밥을 짓겠네 가을이 되면 물론 나는 삽살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며 쓸쓸한 상상을 나뭇가지 끝까지 뜨겁게 펼치겠지만 모두 떠나버린 겨울에는 그녀를 더 쓸쓸하게 하겠지 그러나 난 그..

사진속일상 2009.04.13

꽃길

선운사 주위의 산길은 가볍게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절집도 좋지만 나무와 계곡이 있는 이 산책로를 나는 사랑한다. 선운사에 갈 때는 절을 지나 선운산으로 난 이 길을 가 보기를 권하고 싶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선운산을 오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선운산 정상은 두 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이 산길에 지금 현호색이 한창이어서 꽃길을 이루고 있다. 길 가운데에도 꽃이 피어있어 발을 디디기가 조심스럽다. 산수유, 매화, 벚꽃 등 눈을 화려하게 하는 봄꽃의 향연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몰려 다지지만, 이렇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발밑에서도 작은 꽃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현호색 외에도 댓잎현호색, 제비꽃, 양지꽃, 산자고, 자주괴불주머니, 개불알풀, 개별꽃, 냉이꽃, 꽃다지 등이 눈에..

사진속일상 2005.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