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권 3

추석 만월 / 송진권

애탕글탕 홀아비 손으로 키워낸 외동딸이 배가 불러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네 각다귀 놈과 배가 맞아 야반도주한 뒤 한 이태 소식 끊긴 여식 더러는 부산에서 더러는 서울 어느 식당에서 일하는 걸 보았다는 소문만 듣고 속이 터져 어찌어찌 물어 찾아갔건만 코빼기도 볼 수 없던 딸년 생각에 막소주 나발이나 불던 즈음일 것이다 호박잎 그늘 자박자박 디디며 어린것을 포대기에 업고 그 뒤에 사위란 놈은 백화수복 들고 느물느물 들어오는 것 같은 것이다 흐느끼며 큰절이나 올리는 것이다 마음은 그 홀아비 살림살이만 같아 방바닥에 소주병만 구르고 퀴퀴하구나 만월이여 그 딸내미같이 세간을 한번 쓰윽 닦아다오 부엌에서 눈물 흘리며 조기를 굽고 저녁상을 볼 그 딸내미같이 - 추석 만월 / 송진권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다. 심..

시읽는기쁨 2022.09.12

찬지름 들지름 / 송진권

찬지름 들지름 들이 서울 갑니다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강변에 모랫벌에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가 여름내 김매고 땀 흘려 가꾼 참깨 들깨 들이 찬지름 들지름이 되어 소주병에 담겨 서울 가는 기차를 탑니다 마른 나무 강변말 해바라기 선 집 들지름 발라 김 구워 주면 미어지게 먹던 막내를 생각합니다 날달걀 깨서 찬지름 떨어뜨려 밥 비벼 주면 다른 반찬 없이도 한 그릇 해치우던 맏이를 생각합니다 - 찬지름 들지름 / 송진권 가을은 아프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지은 농작물을 갖고 오는 것도 죄스럽다. 가을이 되면 모시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더해진다. "나도 이제 따스한 밥 얻어먹고 싶다." 가을은 불효를 자각하고 속울음을 삼키게 되는 계절이다. 충청도에서는 '찬지름 들지름'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자식을 향한 모정이 '..

시읽는기쁨 2016.11.07

이소 / 송진권

오빠랑 언니들도 아까부터 지달리구 있는디 뭘 그르케 자꾸 꾸물대는 겨 그르케 자꾸 꾸무럭거리믄 떼 놓고 갈 텡께 알아서 햐 어여어여 날 새기 전에 가야 하니께 싸기싸기 내려오니라 비얌이랑 쪽제비가 일어나기 전에 어여 물로 가야 하는디 당최 쫑마리가 저런다니께 엄마두 이제 몰러 오든지 말든지 맘대로 햐 엄마 원앙이가 언니들 앞에 서자 일곱 마리 원앙이가 졸래졸래 따라간다 멈칫대던 막내가 그때사 느티나무 고목 둥치에서 뛰어내린다 엄마 같이 가 하냥 가자니께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둥구나무 딱따구리가 뚫어 놓은 원앙이네 둥지 - 이소 / 송진권 원앙이 가족의 모습이 정겹다. 삶의 기본에서는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나 차이가 없다. 동물이 새끼를 돌보고 기르는 지극함은 인간에 못지않다. 다른 점이라면 새끼가 성장하..

시읽는기쁨 201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