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8

소설 무소유

소설 형식을 빌려 정찬주 작가가 쓴 법정스님의 일대기다. 초판이 2010년에 나왔으니 스님이 돌아가신 해에 출판한 책이다. 작가는 스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한 인물을 그릴 때 대체로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에는 보이지 않는다. 스님의 생각과 삶이 사실 그대로 실려 있다. 법정스님 하면 누구나 무소유를 떠올린다. 스님이 봉은사 다래헌에 계실 때인 1976년에 쓴 는 국민의 필독서가 되었고 무소유의 정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스님 자신이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에 울림이 더욱 컸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법정스님이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스님 시자로 있을 때 무소유의 가치를 깨닫는 일화가 나온다. 어느 날 효봉스님의 걸망을 빨려고 하다가 걸망 안에서 비누조각을 발견했..

읽고본느낌 2022.12.07

스님이 선택한 죽음

며칠 전 연관(然觀) 스님의 영결식이 열렸다는 기사가 나왔다. 연관 스님은 불교계의 큰 어른이셨고, 특히 한문에 조예가 깊으셨다. 스님은 독거 수행승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1년에 8개월 정도는 선 수행을 하신 분이시다. 또한 도법, 수경 스님과 지구 환경과 생명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 참여하셨다. 스님이 화제가 된 것은 돌아가신 방식 때문이다. 돌아가실 때가 되었음을 인지하신 뒤에는 항암치료 대신 곡기를 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마지막을 맞으셨다고 한다. 마지막 일주일 전쯤부터 곡기를 끊고 물과 차만 마시다가, 마지막 사흘간은 아예 물도 끊으셨다. 여느 사람들이 마지막에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과 달리 스님은 평생 수행을 해 온 분답게 입적 하루 전까지도 의식이 또렷했고, 찾아온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고..

참살이의꿈 2022.06.21

내 귀는 어찌하여 이런 이야기를 듣는가 / 이진명

한 선방(禪房) 승(僧)의 아무 고저장단 없는 먼, 마른 목소리의 첫째 이야기를 듣는다 말도 없이 출가해 수년 후 정식 비구계를 받고 고향집 양친을 찾아 갔노라고 50줄 아버지가 오늘 나랑 함께 자자며 이부자리를 펴시는데 중은 다른 사람이랑 같이 안 잡니다 쌀쌀맞게 내뱉고는 다른 방에서 잤노라고 한 선방 승의 찬 하늘 구만리를 가는 기러기라도 배웅하는 듯, 젖힌 고개의 둘째 이야기를 듣는다 누나가 미국으로 이민간다고, 공항에서라도 얼굴 한 번 보고 싶다고 전갈온 적 있었노라고 절방 마루 끝에 서서 비행기 출발했겠구나 산문 밖이나 건너다 보았노라고 누나 아이가 둘이라는데 그 조카들 얼굴도 모르고 한 선방 승의 고저장단 없는 먼, 마른 목소리의, 이번에는 아주 작은 웃음기가 입가에 짧게 머문 셋째 이야기를 ..

시읽는기쁨 2013.02.07

스님의 눈물

며칠 전 서울 조계사에서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한강선원(漢江禪院) 개원식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수경 스님이 기도를 드리며 울고 있다. 비록 사진으로 본 스님의 모습이지만 마음이 아파서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이 정권은 가증스럽게도 '4대강 살리기'라는 언어의 유희를 하면서 서슴없이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국민 과반수가 반대해도 마이동풍으로 밀어붙이는 저 배짱은 무엇인가. 자신의 임기 안에 강을 다 파헤쳐야 속이 시원하다는 듯 공사 현장은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제발 강 하나만 건드려서 마음 먹은대로 만들어 보아라. 정말 강이 살아나고 온 생명과 공존하는 개발이라면 어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리고 이 거대 사업이 10년이 걸리고 20년이 걸리면 어떠랴. 이 정권은 조루증에 ..

길위의단상 2010.05.28

지지고 볶는 일상이 훌륭한 법당

며칠 전 급체에 걸려 지금껏 고생을 하고 있다. 전날 밖에서 저녁 식사를 너무 험하게 먹었기 때문이었다. 잠은 그런대로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찾아온 통증으로 무척 고통스러웠다. 병원 치료를 받고 겨우 진정되었지만 이틀째 죽으로 연명하며 지내고 있다. '나'에 대한 집착과 과욕이 늘 말썽을 일으킨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우리는 평상시에 잘 인식하지 못한다.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은 건강을 잃고 나서야 절감하게 된다. 소화 기능이 마비되니 정상적인 생활이 모두 무너져 버렸다. 작은 통증 앞에서는 이성이니 지성도 아무 소용이 없고 힘이 되지 못했다. 작은 삐끗함 하나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렇게 내 존재 기반이 허약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느꼈다. 그래서 잃어야 얻는다는 말..

길위의단상 2007.05.24

[펌] 행복은 이미 충분하다

어떤 한 경계에서 가슴 시린 쓰라린 아픔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성공만을 바라고 바라는 대로 잘 되어지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겠지만, 사실 늘상 성공만 하고 바라는 바대로 이루기만 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내면의 뜰은 공허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실패 속에서 또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그 속에서 더 강인해 질 수 있을 것이고, 바라는 바가 좌절되어지는 그 속에서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지혜로움이 생겨나며, 세상을 얕보지 않을 수 있고 좀 더 겸손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가를 가르치는 분이라거나 몸 다스리는 법에 대해 강의하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 분들 비슷한 공통점이 어렸을 때 죽고 싶을 만큼 몸이 너무 ..

길위의단상 2006.09.26

두 스님의 대화

천성산을 지키기 위한 긴 기간의 단식을 마치고 이제 활동을 재개한 지율스님이 대원사로 도법스님을 찾아가 만났다고 한다. 도법스님은 생명평화를 위한 탁발 순례을 하고 있는 중이다. 두 분간에 나눈 대화가 마침 인터넷 신문에 실려서 일부를 옮겨 본다. 기자들이 간접적으로 전하는 기사보다는 이 대화를 통해두 분의 생각과 느낌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고뇌하고 흔들리는 솔직한 모습도 보인다. 대화 중에서 지율스님이 말씀하신 동화와 전설이 사라진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크다. 특히 환경운동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생명에 대한 영혼의 떨림이 없는 환경운동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은 머리 보다는 가슴, 이성 보다는 감성을 원한다. 사실은 이 시대가 동화와 전설을 쫓아내고 있다. ..

길위의단상 2005.05.03

지율 스님

지율 스님의 소식이 안타깝다. 80여일의 단식 중에 홀연히 잠적해서 가까운 사람들도 그 행방을 모른다고 한다. 지난 번 법원 판결 이후 스님이 내건 조건도 많이 완화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정부 측에서는 '법대로'를 외치며 무시해버리는 듯해서 더욱 우울하다. 스님의 단식에 대해 일부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것은 천성산이라는 지역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스님이 말하는 대로 인간과 자연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자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 같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인간과 자연을 대립적으로 보아야 할 아무런 근거도 없고 또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어 생존할 수도 없다. 그런데 현대 문명과 인간이 가진 힘은 이제 자연을 이용하는 정도를 넘어 자연을 훼손하고 뭇 생명을 파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젠 그런 예를..

길위의단상 2005.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