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두 스님의 대화

샌. 2005. 5. 3. 10:49

천성산을 지키기 위한 긴 기간의 단식을 마치고 이제 활동을 재개한 지율스님이 대원사로 도법스님을 찾아가 만났다고 한다.

도법스님은 생명평화를 위한 탁발 순례을 하고 있는 중이다.

두 분간에 나눈 대화가 마침 인터넷 신문에 실려서 일부를 옮겨 본다. 기자들이 간접적으로 전하는 기사보다는 이 대화를 통해두 분의 생각과 느낌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고뇌하고 흔들리는 솔직한 모습도 보인다.

대화 중에서 지율스님이 말씀하신 동화와 전설이 사라진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크다.

특히 환경운동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생명에 대한 영혼의 떨림이 없는 환경운동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은 머리 보다는 가슴, 이성 보다는 감성을 원한다.

사실은 이 시대가 동화와 전설을 쫓아내고 있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냉철한 현실주의자가 되도록 교육 받는다. 꿈을 가진 낭만주의자들은 이 세상을 버텨내기가 힘들다.

우리가 그래도 이만큼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이런 분들의 고뇌와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눈에 보이는 거대 기업과 경제 성장과 자본만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아니다.

이분들은 두껍고 단단하고 거대한 세상의 벽을 맨주먹으로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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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 스님, 기다리셨는지요? 길을 몰라 터덕거렸습니다. 앞으로 바빠질 것 같아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도법 : 몸은 어떠신가?


지율 : 크게 아픈 데는 없습니다.


도법 : 타고났구먼. 타고났어.


지율 : 어깨가 아프고… 약간의 풍이 왔나 봅니다. 하지만 마음이 더 아픕니다. 사는 것이 힘이 듭니다.


도법 : 쉬운 길 하나 일러줄까? 나랑 임무를 바꿔보면 어떤가. 나는 천성산을 지키고, 지율은 탁발순례를 하고.


지율 : 천성산 지키는 것 외에는 자신이 없어요. 재주도 없고 용기도 없고. 그런데 단식 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언론이 마구 때리더군요. 마치 마녀사냥을 하듯. 안티사이트가 스무개나 생기고…. 단식보다 더 힘이 들었어요.


도법 : 내 생각은 이래요, 이제 지율은 좀 쉬었으면 해. 천성산 문제는 시민단체에 맡기고 뒤에서 역할을 맡는 게 어떨까 싶어. 또 다시 전위에 서면 어려운 일이 많을 것 같구먼.


지율 : 스님, 저는 한 길밖에 모릅니다. (그때 보살이 요사채에 들어와 지율에게 절을 올렸다. 지율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도법 : 불교는 체념하는 종교지. 체념은 달리 말하면 달관이야.


지율 : 저도 체념이 뭔지 이제 알겠습니다. 자신한테 체념하고 있습니다.


도법 : 문제를 푸는 방법도 여러 가지지.


지율 : 저는 의지력이 약해서 자신에게 다짐을 합니다. 산과 맹세도 하고 나무와 대화하면서 저 스스로를 채찍질했습니다. 굴참나무에게는 “나무야 도와 달라, 그러면 내가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도법 : 약속했다고 다 지킬 수는 없지.


지율 : 저도 지키고 싶지 않아요. 너무 힘들 때가 많아서지요.


도법 : 딱한 일이야. 곰곰 따져보면 싸울 상대는 오히려 우리 내부에 있는지도 모르지. 사찰의 환경파괴를 묵인하고 남을 꾸짖을 수는 없다는 말이야. 자연 생태는 어디에 있든 중요한 것이지. 부처는 절집을 위해 자연을 죽이라고 가르치지 않았거든. 우리가 싸울 상대는 우리 자신이지.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으니….


지율 : 천성산에 내려갔더니 그 장엄한 화엄벌에 체육시설을 만든다고 해요. 200억을 들여 산 정상까지 자동차길을 만든다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단식 때 왜 산이 나를 데려가지 않았는지, 거기엔 이유가 있었구나 생각했습니다.


도법 :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다 똑같아. 주민이 원하면 무엇이라도 하지. 대통령도 어쩔 수 없어. 표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걸 어쩌겠는가. 더 많이, 더 편리하게를 좇아가는 거지.


지율 : 화엄벌을 인간이 짓밟는 행위를 두고 신문에서는 “양산 발전 10년 앞당겼다”는 제목을 달아 부추겼습니다. 천성산을 싸구려 관광지로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도법 : 이 시장이 저 시장이고, 이 군수가 저 군수고, 이 대통령이 저 대통령이지. 끝없이 개발성장정책을 밀어붙일 뿐이야. 모든 산하가 그 정책에 부서지고, 그중 아주 작은 하나가 천성산이지. 천성산이나 새만금에 매달리지 않고 그걸 넘어설 큰 흐름이 있어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성숙해진 시민사회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 같아. 자연, 생태계, 농촌, 농업, 민중 등을 아우를 수 있도록 역량을 결집해야 해. 그래야 정부를 설득할 수 있지. 하나하나 흩어져 싸워봐야 성과가 없어. 순례하며 그걸 느꼈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역량을 모아야 해. 그래야 희망이 생기지. 희망은 있는 것이 아니야. 만들어가는 것이지.


지율 : 시민단체가 너무 이성적 훈련을 많이 받아서 그것도 문제 같습니다. 동화와 전설이 잊혀지고 있습니다. 시민운동이 너무 메마르고 정치적이에요.


도법 : 대안을 찾으려면 싸우면 안 되지. 승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타협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야. 새만금만 해도 그 속에 자연 생태적 아픔과 전라북도 도민의 아픔이 함께 녹아 있지. 전북도민의 개발욕구는 역대 정권에서 계속 소외된 한이 맺혀 있기에 피맺힌 아픔이란 할 수 있어. 새만금 개발이 옳으냐, 그르냐와는 별개야. 이런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까라는 성찰을 하지 않으면 그것 또한 대안 없는 환경운동이라는 말이지.


지율 : 4년간 지켜봤는데 저들은 99개를 개발하고도 하나 남은 것을 또 개발하려 합니다. 저는 40만원을 보시 받아서 한 달을 쓰는데, 저들은 천문학적인 돈으로 모든 것을 부수고 있습니다. 그 벽이 너무 거대하여 말 그대로 절망입니다. 어떤 공사 책임자는 우리더러 “귀때기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떠든다”고 했어요. 정말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은 신념과 희망뿐입니다.


도법 : 알아, 알고 말고.


지율 : 누구랑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도법 : 이제 종교·시민단체가 나서서 지율스님 시름을 없애줘야 할 텐데…. 새만금만 해도 방법이 없지 않아요. 새만금은 최소한의 개발로 매듭을 짓고, 전북민이 납득할 경제 활성화대책을 별도로 세우면 풀릴 수 있지. 시민사회가 접점을 찾아줘야 하는데, 그게 아쉬워.


지율 : 그동안 환경연합 등 시민단체와도 각을 세웠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안타깝습니다. 저는 환경운동을 하면서 제 안에 있는 악(惡)을 느꼈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이런 악이었나 하는 생각에 참담했습니다.


도법 : 그건 그런 게 아닐 게야. 성장하는 것이지.


지율 : 저는 이제 세상을 희망의 눈으로 봅니다. 제가 천성산을 지키자는 결심도 그동안 세상에 탐닉했던 벌이며, 누려온 사람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나무와 숲을 눈으로 키웠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무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찬탄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생겨났다는 것이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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