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대화

샌. 2005. 4. 20. 16:01

지난 15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리영희 선생님의 신간인 ‘대화’ 출판을 기념한 독자와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가까이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참석했었는데, 100여 명이 모여서 몸이 불편한 선생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나타내었다. 넓은 홀의 자리는 많이 비었지만 대중성 없는 이런 모임에 그래도 이만한 인원이 참석했다는 결코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선생님과 무슨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젊은 시절에 선생님의 글을 읽고 감명을 받은 바도 없지만, 독재에 저항한 올곧은 한 길의 삶이 멀리서 늘 외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현실에 야합하고 변절하는 사람이 원로 행세를 하며 큰소리치는 지금의 세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5년 전에 선생님은 뇌출혈로 쓰러지셨는데 지금은 많이 회복되시어 예의 꼬장꼬장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어 무척 고마웠다.

그러나 현실 문제에 대한 언급은 안 하시겠다는 말씀대로 날카로운 현실 비판을 삼가고 말을 아끼는 모습에서 할 역할을 다하고 물러나는 노학자의 지혜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모임에서 들은 선생님의 말씀 중에 인상적은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형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겨울공화국’을 낭독하시면서 형벌을 거치지 않고는 자유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물론 이것은 야만의 시대에 수없이 연행되고 감옥에 간 선생님의 전력과 연관이 된다.

선생님의 삶을 이끌어준 이념은 자유와 책임이었다고 한다. 지성인은 마땅히 자유인이 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는 형벌이다’라는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이것은 정치적인 자유나, 사회적인 자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정신의 자유, 영적인 자유에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나도 ‘참된 자유는 고난을 통해서 얻어진다’라고 말하고 싶다. 보통 우리는 너무나 쉽게 열매만을 맛보려 한다. 그러나 삶이 없는 이론이나 과정이 없는 결과는 공허하다.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다. 쓰디쓴 삶과 사유의 경험을 통하지 않고 진정한 자유에 이를 수는 없다고 본다.

‘자유는 형벌이다’라는 말은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억압자가 사라졌는가? 아니다. 정치적 상황은 나아졌지만 오히려 더 교묘하고 교활한 방법으로 인간 자유를 억누르는 억압자의 먹구름이 우리를 덮고 있다.

나는 그것을 정치 경제적으로는 세계화의 물결과 성장주의의 신화로, 정신적으로는 도그마화 된 종교의 굴레를 대표적으로 들고 싶다.


둘째, 선생님의 삶의 모토는 ‘Simple life, High Thinking’이라고 하셨다.

특히 단순 소박한 생활을 강조하셨다. 이것은 선생님이 직접 실천하고 계시다는 의미일 것이다. 단순한 생활이란 결국 인간 욕망의 절제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공생(共生)의 정신이다.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정신이다. 물질적인 소비를 줄이고 환경을 생각하는 생태적인 마음이다.

인류의 미래는 거창한 담론이나 발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 소박한 삶의 실천에 있음을 믿는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질 때 지구의 희망도 되살아날 것이다.


이번 대화의 시간에 현실 비판의 천둥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내신 노학자의 연륜과 지혜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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