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비 오는 날의 공상

샌. 2005. 5. 6. 15:09

봄비가 내린다. 어제 저녁에 시작된 비가 밤새 내리더니 오늘 낮까지 이어진다. 지금은 이슬비로 변해서 멀리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안개에 잠긴 듯 희뿌옇다.

며칠간 계속되던 더위가 도망을 가 버렸다. 또한 농촌에는 고마운 단비가 될 것이다. 밭에 심은 모종들이 건조한 태양의 열기를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생기를 되찾을 것이다.


봄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공상에 잠긴다.

이런 날은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서 한적한 바닷가에 가고 싶다. 그리고 인적 드문 해안가를 쓸쓸히 걷고 싶다.

옆에는 사랑하는 그녀가 있다. 말이 없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 반가운 사람이다. 바닷가 작은 카페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면 마음까지 따스해질 것이다. 넓은 유리창으로는 빗줄기가 사선을 그으며 낙서를 한다. 원시의 모습을 닮아가는 바다는 우리를 자꾸 유혹할 것 같다.


취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오래된 모텔에 들어 몸을 녹이고 싶다. 와인에 취하고 그녀에 취하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취한다.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를 무척 기다릴 것 같다.

남녀간에 사랑을 나누는 것을 예부터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고 했다. 비 내리는 날은 하늘과 땅이 사랑을 나누는 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상의 생명체들은 더욱 사랑의 충동을 느끼는가 보다. 소나기 같은 사랑이 아니라, 이슬비 같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오면 창밖으로 점점 어두워지는 바다 풍경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싶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사물들의 서러움을 내 마음 속에다 담아두고 싶다.

사라지는 것들 또한 섹스를 연상시킨다. 어제 저녁, 친척 형의 빈소에 다녀오는 길에서도 내내 그런 상상에 매달렸다.

죽음과 탄생은 하나이다. 섹스는 새 생명을 위한 의식이면서 동시에 사멸의 의식이다. 그것은 충족이면서 소멸이며, 생명의 환희면서 절대무(絶代無)를 향한 갈망이다.


밖은 어둠 속에 잠기고, 안에는 나른한 휴식의 시간이 찾아온다. 유리창을 때리는 빗줄기는 더욱 거세진다면 좋겠다. 여기는 세상의 일로부터, 세상의 짐으로부터 단절된 따뜻한 피난처가 된다.

그곳에서 편안한 안식의 잠에 빠져들고 싶다. 영원히 깨지 않아도 좋을 달콤한 잠 속에 잠기고 싶다.


누구라도 일상에서의 일탈의 꿈을 꾼다. 그 꿈은 현실을 벗어나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허황될 수도 있고, 일시적인 환각 작용에 불과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우주는 잡탕이라고 했다. 단단한 땅을 딛기 위해서는 하늘을 나는 공상도 꼭 필요할지 모른다.

우리 뇌는 현실에서의 실제적 경험과 두뇌작용에 불과한 상상의 세계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머리 속으로 상상한 것은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짧은 시간 나는 멋진 여행을 한 셈이다. 상상의 세계는 현실보다 훨씬 더 황홀하다.


이슬비에 젖고 있는 비에 젖은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 제 자리로 돌아온다.

한 순간의 내 짧은 공상은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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