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지역 주민들이 관광단지 개발에 반대하는 평화적 시위를 했다. 정부는 이 지역에 복합레저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어제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농민이 대부분인 주민들은 충분한 보상을 해주겠다는 것도 거부하고 철새 도래지인 이곳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돈 보다는 환경이, 자연과의 공존이 더욱 중요함을 농민들은 보여 주었다.’
이것은 머리 속으로 상상해 본 신문 기사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천수만 지역 주민들이 철새들을 내쫓는다고 갈대밭에 불을 지르고 폭죽을 터뜨리는 충격적인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환경부에서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인 이곳을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모든 개발이 금지되기 때문에 관광도시와 웰빙특구를 추진 중인 천수만 일대 주민들에겐 경제적 부에 대한 꿈이 사라지게 된다.
주민들을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다. 대기업에 의해서 개발 계획이 세워지면서부터 땅값이 벌써 두 배나 뛰었다니 지역 주민들로서는 이런 현실을 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서글퍼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천수만 지역은 방조제를 쌓고 대규모 농지를 조성한 곳이다. 처음에는 식량의 자급 차원에서 만들어졌겠지만 이제 농지는 경제성이 없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여기에 정부의 반환경적인 정책까지 더해져 국토는 지금 자본 증식의 실험장이라도 되는 듯 포크레인의 굉음에 온통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그렇더라도 개발을 막으면 철새 도래지마저 파괴해 버리겠다는 주민들의 이런 반생명적인 시위는 그분들이 대부분 농민들이라고 알고 있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이젠 농촌 어디에도 농심(農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참된 농부의 마음을 찾아볼 수 없다. 몇 푼의 돈이라면 생명을 가꾸어 오던 땅이라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니 철새를 쫓아내겠다는 발상이 전혀 별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주민들은 “인간과 철새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개발과 환경이 대립할 때마다 자주 듣는 말이다. 지난 번 천성산 터널 논쟁에서도 “도룡뇽이 인간보다 더 중요하냐?”는 반박이 있었다.
아마도 여기서 인간은 돈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돈과 환경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 그래도 돈이라면 할 말은 없다.
그리고 이런 질문 자체가 우문(愚問)인 것이, 인간과 철새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관계이다. 철새를 죽이고 인간만 잘 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우리는 자연과의 공생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인가. 철새가 사라지고 또 얼마나 더 많은 생물들이 우리들 곁을 떠나야 할까?
인간은 땅에 얽매여 있기에
세상에 순응하고 말아요
그건 가장 슬픈 이야기죠
정말 슬픈 말이예요
난 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숲이 되고 싶어요
그래요,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할 거예요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
하늘을 꿈꾸지 않는 인간이 사는 땅, 날아간 철새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간의 땅은 이미 우리 곁에 찾아오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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