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헌에 있는 600년 된 배롱나무다. 신사임당이나 율곡 선생 생존시에도 이 자리에 배롱나무가 있었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나무는 원목의 다음 세대에 해당할 것이다. 보통 고사한 원줄기에서 돋아난 싹이 자라 새 나무로 우뚝 선다. 여름에 분홍색 꽃이 필 때를 노렸지만 이때까지 한 번도 때를 맞추지 못했다. 나무는 잎과 꽃으로 치장했을 때보다 나체일 때 진면목이 드러난다. 겨울 배롱나무는 옷을 홀랑 벗고도 당당하다. 매끄러운 살결이 세월의 무게로 주름이 졌다. 인간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