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2007 겨울 여행

샌. 2007. 2. 6. 14:23

심신이 지쳤을 때는 여행을 생각한다.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땅, 낯선 사람들에게 가고 싶어진다. 이번 겨울 여행은 아내와 같이 강원도 동해 지역을 중심으로 다녀왔다.


일시: 2007. 2. 2 - 2. 5 (3박4일)

경로: 서울 출발 - 평창 허브나라농원 - 월정사 - 대관령 - 오죽헌 - 경포호(1박) - 안보전시관 - 정동진 - 추암 - 헌화로, 새천년 도로 - 죽서루 - 삼척(1박) - 환선굴 - 화암약수 - 동강 연포분교 - 영월(1박) - 청령포- 의림지 - 베론 - 서울 도착

경비: 34만 원


첫째 날(2/2)


반짝 추위의 끝에 맑은 하늘이 열렸다. 당분간은 험한 날씨가 없다는 예보에 길을 떠났다. 겨울 여행은 기상 상태에 제일 마음이 쓰인다. 특히 강원도 지역은 더욱 그렇다. 아무리 조심을 하더라도 예기치 않은 강풍과 폭설에 고생을 하기도 한다. 젊었을 때는 그런 것 또한 여행의 재미이기도 했겠지만 이젠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된다.

 



영동고속도로를 지나다가 꽃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평창 허브나라농원에 들렀다. 허브(Herb)란 예로부터 약이나 향로로 써온 식물을 가리킨다고 한다. 허브를 서양 식물로만 알고 있었는데 우리의 자생 식물에도 상당량이 허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온실에서 반가운 꽃들을 만났는데 대부분이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꽃들은 작고 예뻤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연결되는 전나무 숲길을 걷고 싶어 찾아갔으나 높은 산의 계곡이어선지 그늘지고 추웠다. 차들이 왕래하는 길은 울퉁불퉁하고 미끄러워 편안히 걷기에는 영 마땅찮았다. 조금 걸어 들어가다가 이내 포기했다. 옛 대관령 휴게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래서는 잠잠하던 바람이 이곳에서는 세차게 불었다. 풍력발전기의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무섭게 들렸다. 하얀 눈 덮인 능선을 올라가 보고 싶다는 바람 또한 차가운 겨울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나에게 겨울이라고 하면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북서풍이 늘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 맞바람과의 싸움이었다. 조그만 몸뚱이는 날아가지 않으려 앞으로 45도로 굽힌 채 뛰어야 했다. 그러나 금방 볼이 따갑고 아파서 둑 아래서 몸을 녹였다가 다시 뛰어가기를 반복했다. 이젠 고향에 가도 그 사납던 겨울바람을 만나기가 힘들다.

 



드디어 경포해수욕장 동해에 도착했다. 마침 휘영청 보름달이 바다에 떠 있었다. 하늘에 뜬 달, 경포호에 비친 달, 그리고 술잔에 어린 달의 낭만을 노래했던 옛사람의 말이 떠올라 경포호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싼 네온사인 불빛에 놀랐는지 호수의 달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무심한 철새들만이 후두둑 날개짓을 하며 쫓고 쫓기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여행을 가면 늘 묵어야 할 숙소가 걱정이다. 경포해수욕장 부근에는 엄청나게 많은 숙소가 있지만 많으면 많은 대로 역시 선택해야 할 고민이 생긴다. 무엇보다도 충분히 휴식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해야 한다. 어쩌다 옆에 아이들이 딸린 가족이 들어오면 뛰고 쿵쾅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 그쪽도 여행 기분을 만끽할 텐데 조심하라고 할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할 때가 있다. 그래서 방을 얻을 때 늘 조용한 방을 달라고 한다. 다행히도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걱정은 모두 기우였다. 다행히 모텔 지하에 해수 사우나가 있어서 덤으로 하루의 피로를 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터에 대한 기쁜 소식이 왔다.


둘째 날(2/3)


이날 아침은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난생 처음으로 해수면에서 바로 떠오르는 오메가 일출을 보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전날 밤에 아내와 얘기하며 조상 몇 대가 덕을 쌓아야 이 일출을 볼 수 있다는데 우리는 그른 것 같다고 한 바가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따라나서지도 않고 나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선물이 주어진 것이었다. 아마 이날 동해안에 섰던 많은 사람들 중 누구의 덕을 내가 입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이 해돋이는 정말 장관이고 감동이었다. 해수면에서 바로 솟아나오는 붉은 불덩이에서 마지막 오메가 현상으로 마무리까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고 여길 정도로 짧게 느껴졌다. 숨이 멎을 정도로 흥분된 순간이었다.

 



일몰이 소멸의 아름다움을 말해 준다면 일출은 존재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생명과 존재에 대한 희망과 환희의 노래다. 서해 바다 해넘이의 곱고 화려함을 사랑하지만 동해 바다 해돋이의 가슴이 터지는 듯한 감동 또한 사랑한다. 동해 일출을 보면 웅장한 베토벤의 심포니가 터져 나오는 듯하다. 서해 해넘이나 동해 해돋이나 공통적인 것은 자연의 장엄함이다. 그 앞에서 작은 인간은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하늘이 주는 사랑과 감사를 느끼게 된다.


남쪽으로 내려가며 그 유명한 정동진에 들렀다. 그러나 유명 관광지에서 대개 실망하듯 정동진도 마찬가지였다.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오염되어 있고, 거대한 건조물들이 풍광을 망쳐놓고 있었다. 뭐랄까, 물신에 물든 촌스러운 느낌에 마음이 어두웠다. 백사장을 가로지르며 바다로 흘러가는 그대로 방치된 하수 때문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풍경에 사람들은 이내 질릴 것이다. 그리고 한적한 바닷가, 작은 기차역 등 우리가 쉽게 버린 것들을 언젠가는 다시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추암 바닷가는 기암괴석들이 볼만했다. 예전에는 언덕 꼭대기에 군인들 감시 초소가 있어 올라갈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전망대까지 설치하고 잘 정비되어 있어 좋았다. 이곳에서 찍은 일출 사진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도 욕심이 생겼지만 아침의 오메가 일출 감동이 살아있어 여기서의 해맞이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이 부근의 해안도로는 절경이었다. 헌화로로 명명된 도로는 삼척 부근의 새천년 도로와 함께 아무 데서나 차를 세우고 보아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는데 다만 아쉬운 것은 해안을 따라 세워진 철조망이었다. 사람의 출입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 바다 전망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흉물이었다. 북에 대한 감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좀더 세련한 방법은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 들었다.

 



북평 시내를 지나다가 오랜만에 장 구경을 하게 되었다. 시골도 아닌 도시에서 이런 장이 선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큰길과 그 사이 골목길들이 온갖 노점상들로 가득한 아주 큰 장이었다. 일부밖에 보지 못했지만 세상의 온 만물이 진열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내 눈에는 진기한 해산물들이 제일 신기했다. 백화점은 싫지만 이런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는 아이쇼핑은 매우 재미있다. 그것은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과 그걸 사고파는 사람의 표정과 말이 함께 살아있기 때문이다. 즉 옛 장터에는 사람 사이의 정이 살아 숨쉬고 있다.


저녁에는 삼척 성내동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시내 언덕 위에 있는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그리고 인근 작은 여관에서 몸을 쉬었다.


셋째 날(2/4)


아침 일찍 삼척을 출발해 환선굴로 향했다. 아침 공기가 무척 맑고 깨끗했다. 기온은 아침인데도 10도 가까이나 되어 영동 지방이 푄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이번 겨울의 이상난동은 심각하다. 여러 지방에서 1월의 평균기온이 100년 만의 최고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 원인의 80% 정도가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자동차를 운전하며 즐기고 돌아다니는 것 또한 지구 온난화의 주범에 속한다. 내가 걱정하고 비난하는 것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으로 미안해진다.

 



환선굴 들어가는 길에 바라본 앞산의 눈 덮인 풍경이 마치 사진으로만 본 알프스 지방 같았다. 굴 입구까지는 꽤 긴 길이었는데 힘은 들었지만 무척 고맙게 생각되었다. 인간의 편의만 생각한다면 더 많은 시설물을 더 가까이에 세워야 할 것이다. 케이블카라면 더 손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 속을 걸어가는 과정이 힘은 들지만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땀을 흘려보면 알게 된다. 앞으로도 이곳은 그런 유혹을 이겨나갔으면 좋겠다.

 



환선굴은 규모가 크면서 남성적이었다. 고향 근처에 고수동굴이 있어 자주 갔는데 그곳과는 여러 면에서 대비가 되었다. 같은 석회동굴인데 환선굴은 종유석과 석순 등이 발달되어 있지 않고, 물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보였다. 대신 동굴 내부는 높이와 폭이 커서 시원시원했다. 한 시간여 다니는 동안은 자연의 신비에 대한 감탄의 연속이었다. 작은 자동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조심스럽게 찍었건만 나중에 보니 대부분이 흔들려 있었다. 아름다운 장면들은 마음속에 담아두어야겠다.


화암약수에서 톡 쏘는 약수 한 모금을 마시고 동강으로 향했다. 동강은 지난해에 동강할미꽃을 만나러 처음 갔는데 그 풍광에 반했었다. 우리나라 강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그래서 다시 가보고 싶은 강이 섬진강과 동강이다. 이번에는 영화 ‘선생 김봉두’를 찍었다는 연포분교까지 갔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하고 길어서 찾아가는 것을 몇 번이나 후회했다. 그러나 길이 좁아 되돌아나갈 수도 없었다. 누구의 경험대로 정말 몇 시간동안 후진만 해야 될 판이었다. 만약 반대편에서 오는 차와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해는 저무는데 길에 놀래서 연포마을에는 오래 있지 못했다. 연포분교 앞에서는 잠시 기념사진만 찍었다. 영화를 본 아내는 영화의 장면들을 그려보는 듯 했다. 그리고 강변에 나가 찬물에 손을 적셔 보았다. 이곳도 동강의 전형적인 풍경 그대로 한쪽은 깎아지른 거대한 절벽이 서있다. 영월, 정선 지방은 주로 석회암 지대인 듯 보인다. 한반도의 다른 지역, 특히 서해안 지역과는 확실히 지형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곳 풍광은 외지인에게 이국적이다. 여기서 민박을 하려고 했으나 길을 잘못 들어 목표했던 집을 놓치는 바람에 영월로 나갔다.


저녁은 장릉보리밥 집에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아내는 동동주도 곁들였는데 덕분에 과식을 선물 받았다. 새해부터 아내와 나는 반식(半食)을 실천하고 있다. 정확히 반식은 아니지만 식사량이 월등히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약 한 달이 지났는데 둘 다 3kg 정도 체중이 줄었다. 특히 아내의 뱃살은 몰라보게 없어져 스스로 무척 대견해 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여행도 먹는 재미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하루 두 끼를 간단히 먹을 뿐이었다. 밖에서 여행하는 즐거움 중 하나가 그 지방의 맛집을 찾아가는 먹는 재미라는데 우리는 그 유혹은 떨쳐내기로 했다. 그래도 별 아쉬움은 없지만 여행의 피곤함과 겹쳐 약간의 짜증은 감수해야만 했다.


넷째 날(2/5)


아침 9시에 청령포에 닿으니 뱃사람이 이제 잠에서 깨었는지 눈을 비비며 나왔다. 너무 일찍 온 객들이 되어 괜히 미안했다. 강은 밤사이에 살짝 얼어있었고, 철선은 좌우로 휘휘 돌며 우선 얼음을 깨었다. 청령포는 여러 차례 왔지만 강을 건너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곳 역시 자연 경관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다리를 놓지 않는다고 한다. 참으로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흉물스런 다리가 놓인다면 저 청령포와 휘감아 도는 서강의 물줄기는 죽어버릴 것이다.




청령포에서는 단종의 애틋한 사연보다는 멋진 소나무 숲이 우선 눈길을 사로잡았다. 잘 가꾸어진 이 소나무 숲은 550년 전 단종이 이곳에 있을 때의 그 소나무들은 아닐 것이다. 열여섯의 나이에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이곳으로 유배를 온 어린 단종의 심중이 어떠했을까? 그때 단종은 50여명 관졸의 호위를 받으며 한양을 떠난지 7일 만에 이곳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단종어가(端宗御家)정면에 걸려있는 어제시(御製詩)를 읊어본다.


千秋無限寃

寂寧荒山裡

萬古一孤魂

蒼松繞舊園

嶺樹三矢老

溪流得石喧

山深多虎豹

不夕掩柴門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 땅 황량한 산 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솔은 옛 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 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혀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제천 의림지에 들러 늦은 아침을 먹고, 배론 성지를 찾아 신부님을 만나 뵈었다.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똑 같이 힘들다. 다만 그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사람에 따라 다를 뿐이다. 터에 갈 때마다 들리는 궂은 소식에 둘 모두 의기소침해졌다. 한 번 선택이 주는 영향이 참으로 끈질기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단견일 뿐이다. 눈을 아래로 돌리면 넘실대는 파도가 보이지만, 눈을 멀리로 돌리면 그저 고요한 수평선이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이 남긴 대청소를 하고 쉬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결국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제대로 된 자리, 정상적인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 우리는 내 자리를 잠시 벗어나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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