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이별 의식

샌. 2007. 1. 31. 15:37



친척 한 분이 돌아가셨다. 노령이고 병중이라 이미 예상된 죽음이었지만 지상의 남은 사람들이 치르는 마지막 이별 의식은슬프다. 그리고 늘 느끼는 것이지만 장례 의식은 망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살아남은 자들의 위안을 위한 절차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런 의식을 통해 우리는 언젠가는 영원히 이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깨닫게 된다. 남은 사람은 먼저간 사람을 슬퍼하지만 백 년이 지나지 않아 여기 모인 이들 역시 예외없이 이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분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기간을 치매 요양원에서 보내셨다. 정신이 오락가락 해 자식들도 잘 알아보지 못했다. 몇 달 전에 찾아갔던 그 요양원의 분위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거기는 가정에서 돌보기 힘든 치매 환자들이 수용되어 있었는데,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들과 하나 같이 창백하고 감정의 표현 없는 침묵의 표정은 충격적이었다. 점심 시간 직후여서인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중앙 홀에 모여서 휠체어나 소파에 앉아 있었다. TV는 윙윙 거리는데 거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졸거나 그저 멍한 표정들 뿐이었다. 가정에서 치매 환자들은 대개 너무나 활동적이어서 감당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그곳 환자들은 너무나 얌전히 길들여져 있어 마치 약물로 관리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설이나 간호사들에 의한 의료 서비스는 최상의 수준이지만 치매 환자들의 공허한 표정에서는 무언가의 결핍이 분명히 드러나 보였다. 의료 기술이 발달해 생명 연장의 혜택은 받고 있지만 그럴 수록 채워지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것은 의술이 결코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은 개체들에겐 비극이지만 생물 종의 입장에서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개체의 죽음을 통해서 한 종은 계속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개체의 죽음이 없다면 그건 생물에게 비극이고 파멸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런 죽음이란 천지의 이치상 가장 복된 행위다. 내 몸을 기계에 맡겨 놓고 아무 주체적인 결정도 내리지 못하면서 목숨만 부지하는 것은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비참한 노릇이다. 물론 현대 의학을 무시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의 한계와 부작용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언제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기별이 올지 모르지만, 나는 정상적인 의식과 비록 노쇠했으나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육체를 가진 채로 애도보다는 축복의 분위기 속에서 이 세상과 이별하고 싶다. 만약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내가 지상에서 받은 복 중에서 그것이 하늘이 내려준 최대의 축복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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