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2

좌통

'좌통(좌측통행)'은 내 어릴 적 별명이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직후였다. 처음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기본 생활 지도를 했을 테고, 그중에 좌측통행 교육이 있었다. 복도에서는 뛰지 말고 좌측으로 질서 있게 다니라는 담임선생님의 가르침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 아이들이니 말을 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좀 과하셨던 것 같다. 학교를 나가서도 길을 다닐 때는 좌측통행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 한들 철부지들에게 학교 밖에서까지 통할 리가 없었다. 신작로를 지나 논둑길을 걷고 개울과 철길을 건너야 하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 등하교 길이었다. 교문을 나서면 개구쟁이가 되어 장난하느라 정신을 놓았을 것이다. 모범이 되어야 할 고학년의 형들은 좌측통행을 아예 무시했다. 그럼에도 예외가 있었..

참살이의꿈 2024.01.06

손금 보는 밤 / 이영혜

타고난다는 왼 손금과 살면서 바뀐다는 오른 손금을 한 갑자 돌아온다는 그가 오르내린다. 그렇다면 양손에 예언서와 자서전 한 권씩 쥐고 사는 것인데 나는 펼쳐진 책도 읽지 못하는 청맹과니. 상형문자 해독하는 고고학자 같기도 하고 예언서 풀어가는 제사장 같기도 한 그가 내 손에 쥐고 있는 패를 돋보기 내려 끼고 대신 읽어준다. 나는 두 장의 손금으로 발가벗겨진다. 대나무처럼 치켜 올라간 운명선 두 줄과 멀리 휘돌아 내린 생명선. 잔금 많은 손바닥 어디쯤 맨발로 헤매던 안개 낀 진창길과 호랑가시나무 뒤엉켰던 시간 새겨져 있을까. 잠시 동행했던 그리운 발자국 풍화된 비문처럼 아직 남아 있을까. 사람 인(人)자 둘, 깊이 새겨진 오른손과 내 천(川)자 흐르는 왼손 마주 대본다. 사람과 사람, 물줄기가 내 생의 요..

시읽는기쁨 2018.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