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 2

그랬으면 좋겠네 / 이시하

애인이 빨리 늙어 소처럼 느리고 순해지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느지막이 일어나 찬 없는 밥을 우물우물 먹고 나서 산수유 꽃 피었드만, 그거나 보러 가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구경도 참 쏠쏠하구먼, 천천히 걷지 뭐, 그랬으면 좋겠네 강 언덕에 시름도 없이 앉아서는 노을빛이 퍽 곱구먼, 그랬으면 좋겠네 주름진 내 손을 슬쩍 당기며 거 참, 달빛 한번 은근하네, 그랬으면 좋겠네 애인이 빨리 늙어 꾀병 같은 몸사랑은 그만두고 마음사랑이나 한껏 했으면 좋겠네 산수유 그늘 아래 누워 서로의 흰 머리칼이나 뽑아주면 좋겠네 성근 머리칼에 풀꽃송이 두엇 꽂아놓고 킥킥거렸으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허허 웃으며 주름진 이마나 긁적거리면 좋겠네 아직두 철부지 소녀 같다고 거짓농이나 던져주면 좋겠네 한세상 흐릿흐릿 늙어..

시읽는기쁨 2010.03.30

꽃말 하나를 / 이시하

봄이 오면 작은 화단에 이름 모를 꽃들이나 심어야지. 그리고선 내 맘대로 순이, 덕이, 점례, 끝순이 같은 이름이나 지어 줘야지. 지친 저녁달이 마른 감나무에 걸터앉아 졸 즈음엔 이름이나 한 번씩 불러 봐야지. 촌스러워, 촌스러워, 고개를 흔들어도 흠, 흠, 모른 척 해야지. 그래놓고 나 혼자만 간절한 꽃말 하나 품어야지 당신 모르게, 당신은 정말 모르게 - 꽃말 하나를 / 이시하 봄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맞는 것이다. 각자 자신만의 꽃말 하나씩을 가지고.... 세상이 험하다고 상춘곡을 부르지 못하랴. 화단에는 노랑나비가 춤을 추게 할 테야.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취해서 흔들릴거야. 당신 모르게, 당신은 정말 모르게.

시읽는기쁨 2010.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