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3

해마다 봄이 되면 / 조병화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뚝에서 솟은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 해마다 봄이 되면 / 조병화 어느 자리에선가 미당 얘기가 나왔을 때, 국어 선생님이신 S 형이 이런 얘기를 해 주었다. S 형은 미..

시읽는기쁨 2010.03.25

비는 내리는데 / 조병화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비에 막혀 그대로 어둠이 되는 미도파 앞을 비는 내리는데 서울 시민들의 머리 위를 비는 내리는데 비에 젖은 그리운 얼굴들이 서울의 추녀 아래로 비를 멈추는데 진종일을 후줄근히 내 마음은 젖어내리는데 넓은 유리창으로 층층이 비는 흘러내리는데 아스팔트로 네거리로 빗물이 흘러내리는데 그대로 발들을 멈춘 채 밤은 내리는데 내 마음 속으로 내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 내 마음 밖으로 내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막고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가난한 방에 가난한 침대 위에 가난한 시인의 애인아.... 어두운 창을 닫고 쓸쓸한 인생을 그대로 비는 내리는데 아무런 기쁨도 없이 하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데 하루가 오고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비에 막혀 미도파 앞에 발을 멈춘 채 내 마음에..

시읽는기쁨 2008.06.18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조병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였으니 작별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걸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 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말을 배우며 사세 -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조병화 어느덧 거리에는 가로수의 낙엽이쌓이고 있다. 지금 바라보는 창 밖으로 또 하나 빠알간 담쟁이 잎 하나가 아래로 떨어진다. 때가 되어서 어머니 품을 떠..

시읽는기쁨 2004.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