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2

마흔 / 최승자

서른이 될 때는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지 이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로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 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아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 마흔 / 최승자 내 서른은 어땠고, 마흔은 어땠을까? 너무 멀리 왔다. 시인의 절망까지는 아니었어도 돌아보니 그저 신기루였을 뿐. 악착같이 매달린 걸 수록 그랬다. 내 앞에 보이는 게 허깨비인 줄 알지만, 그래도 향하여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게 인생. 갈증을 달래주는 한 줌의 물에 취하여, 믿는 도끼에 발등을..

시읽는기쁨 2015.02.23

쓸쓸해서 머나먼 / 최승자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道家가 지나간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 - 쓸쓸해서 머나먼 / 최승자 최승자 시인의 근황이 조선일보에 실렸다. 놀랍게도 시인은 심신쇠약과 정신분열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시인은 가족도 없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여관방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한다. 밥 대신 소주로 연명하며 죽음 직전 단계까지 간 시인을 외삼촌이 발견하고 병원에 입원시켰다. 신문에 실린 퀭한 눈의 시인의 얼굴이 애처로웠다. 세상의..

시읽는기쁨 2010.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