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4

고요한 밤

하루 중 제일 귀한 시간이 한밤중에 침대에 들 때다. 자정이 지나 위층 집이 잠이 들면 주변은 완벽히 조용해진다. 아무리 귀를 쫑긋해도 들리는 소리는 없다. 마치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듯 세상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 것 같다. 이 시간이야말로 일상에서의 해방감으로 충만해지는 때다. 존재의 근원에 닿은 느낌 같기도 하다. 아, 나는 행복하구나, 라는 말이 절로 속삭여진다. 잡념도 사라지고 하루의 반성도 필요 없다. 그저 있는 자체로 기쁨이다. 그렇게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나에게는 하루의 소란을 잠재워 줄 이 절대 고요가 필요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고요 속에서 낮의 어지러움이 앙금처럼 가라앉는다. 마음이 맑고 편안해진다. 내면의 침묵을 경험하는 몇 안 되는 시간 중 하나가 이때다. 바깥 핑계를 대지만 ..

참살이의꿈 2015.02.09

묵념 5분 27초 / 황지우

- 묵념 5분 27초 / 황지우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많은 얘기를 한다. 침묵이 웅변보다 더 많은 걸 말할 때가 있다. 여기서 '5분 27초'는 광주항쟁에서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유혈 진압된 5월 27일을 의미한다. 우연히도 그날 즈음인 오늘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렸다. 광주의 죽음과 노무현의 죽음에는 공통된 원인자가 있다. 그 거대한 뿌리를 직시하고 분노해야 할 때다. 건망증 환자처럼 시간이 흐른다고 다시 잊어서는 안 된다. 노 대통령은작은 비석 하나를 세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비석의 비문을 황지우 시인이 쓴다고 한다. 작은 비석에 들어가는 작은 문장이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이 시처럼 아무 말이 없는 침묵도 한 방법이 아닐까...

시읽는기쁨 2009.05.29

이청득심(以聽得心)

말이 많아지고 있다. 생각이 번잡하다는 얘기다. 그럴수록 속은 더 공허해진다. 묘한 일이다. 허전한 마음을 잊거나 달래기 위해 말을 많이 하면 반대로 속은 더욱 외로움을 탄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결국 나를 더욱 고립시킨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정작 중요한 생각은 빠뜨린다는 의미다. 말이나 생각이나 더욱 줄이고 줄여야겠다. 어디선가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말을 들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 마음을 얻을 수 있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는 사람 마음을 얻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잊고 있었다.상대방 말을 가만히 들어준다는 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사실 어렵다. 더구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듣는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잘 들을 줄만 알아도 사람 마음을 얻을 수..

참살이의꿈 2009.03.05

침묵의 달

12월의 첫 날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이 달을 `침묵의 달`로 불렀다고 한다. 12월로 시작되는 겨울은 침묵의 계절이면서 휴식의 계절이다. 쉼없이 일하던 자연도 잠시 숨을 고르는 계절이다. 무수한 잎들을 대지에 돌려주고 나무는 고독한 철학자의 모습으로 이 겨울을 맞는다. 뭇 생명들도 분주하던 삶을 멈추고 안식의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점점 차가와지는 날씨에 사람들도 몸을 움츠리며 따스한 방과 가정의 품으로 모여든다. 겨울은 바쁜 삶 속에 묻혀 보지 못하던, 듣지 못하던, 망각하고 있던 것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절이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이 오히려 소중하고 귀한 것임을 알게도 된다. 어둠과 침묵의 가치가 다시 되살아 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소리와 너무 많은 이론들에 노출되어 있었음을 알게..

길위의단상 2003.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