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제일 귀한 시간이 한밤중에 침대에 들 때다.
자정이 지나 위층 집이 잠이 들면 주변은 완벽히 조용해진다.
아무리 귀를 쫑긋해도 들리는 소리는 없다.
마치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듯 세상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 것 같다.
이 시간이야말로 일상에서의 해방감으로 충만해지는 때다.
존재의 근원에 닿은 느낌 같기도 하다.
아, 나는 행복하구나, 라는 말이 절로 속삭여진다.
잡념도 사라지고 하루의 반성도 필요 없다.
그저 있는 자체로 기쁨이다.
그렇게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나에게는 하루의 소란을 잠재워 줄 이 절대 고요가 필요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고요 속에서 낮의 어지러움이 앙금처럼 가라앉는다.
마음이 맑고 편안해진다.
내면의 침묵을 경험하는 몇 안 되는 시간 중 하나가 이때다.
바깥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밖이 아니라 마음이 소란하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내 속의 광마(狂馬)는 이 시간에야 온순해진다.
길들이려 하면 날뛰지만 가만히 두면 얌전하다.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자세로 저도 누워 있다.
진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아니다.
아직은 인간이 모르는 미지의 에너지로 가득한 곳이다.
만물을 생성 유지하는 힘이 거기서 나온다.
나는 이 고요의 시간에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이치를 조금은 느껴본다.
고요함이 단지 소리 없음이 아니다.
하나였던 시절에는 별의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해가 뜨는 소리를 들을 수 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참으로 소중한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고요,
침묵,
없음,
없음의 있음,
세상의 소음이 지워지고
마음의 들끓음도 진정되는
잠들기 전 이 시간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