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잠 3

식당 / 프란시스 잠

나의 식당에는 빛바랜 그릇장이 하나 있지요.그는 나의 고모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들었고나의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고나의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었지요.이 장은 이 추억들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어요.만일 사람들이 이 장이 묵묵부답이라고만 생각하면 잘못이지요.나는 이 장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니까요. 식당에는 또 나무로 된 뻐꾸기시계가 하나 있지요.나는 이 시계가 왜 이제는 목소리가 없어졌는지 알 수 없어요.그에게 물어볼 생각도 없구요.아마 태엽 속에 담겼던 목소리가 깨어졌겠지요.그저 죽은 사람이 목소리가 없어진 것같이. 거기에는 또 낡은 찬장이 하나 있지요.그 속에는 밀랍, 잼,고기, 빵, 그리고 무른 배 냄새가 납니다.이 찬장은 충직한 청지기로 이 집에서어떤 물건도 훔쳐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답니다. 우..

시읽는기쁨 2024.09.10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 프란시스 잠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를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 프란시스 잠 우리는 너무 거창한 걸 좇는 건 아닐까. 그래서 작은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 행복을 찾아 멀리 나가보..

시읽는기쁨 2015.09.18

당나귀가 나는 좋아 / 프란시스 잠

물푸레나무 긴 울타리를 끼고 걸어가는 순한 당나귀가 나는 좋다. 당나귀는 꿀벌에 마음이 끌려 두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태워 주기도 하고 호밀이 가득 든 부대를 나르기도 한다. 당나귀는 수챗가에 가까이 이르면 버거정거리며 주춤 걸음으로 걸어간다. 내 사랑은 당나귀를 바보로 안다. 어쨌든 당나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언제나 생각에 젖어 있고 그 두 눈은 보드라운 비로드 빛이다. 마음씨 보드라운 나의 소녀야, 너는 당나귀만큼 보드랍지 못하다. 당나귀는 하느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 닮아서 당나귀는 보드랍다. 당나귀는 피곤하여 가벼운 모양으로 외양간에 남아서 쉬고 있다. 그 가련한 작은 발은 피곤에 지쳐 있다. 당나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가 할 일을 모두 다했다. 그런데,..

시읽는기쁨 2004.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