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 2

하이쿠로 본 노년

일본노인요양협회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이쿠를 모집해서 입상작을 뽑고 있다. 매년 여는 행사라고 한다. 아래는 올해의 수상작이다. 나도 이제 노년에 들고보니 남의 일 같지 않다. 세월을 이길 장사가 있는가. 몸과 정신이 쇠해지는 걸 지긋이 바라보며 살고 있다. 일본 노인의 심정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연상이 이상형인데 더 이상 없어 전철 개찰구 안 열려 봤더니 이거 진찰권 LED 전구 내 남은 수명으로는 다 쓰지도 못해 도쿄 올림픽 어디서 보려나 하늘인가 땅인가 이생의 미련 없다고 하지만 지진엔 도망가 주변 사람들이 칭찬하는 손글씨 사실은 손떨림 사랑인 줄 알았건만 부정맥 펜과 종이 찾는 도중에 쓸 문장 까먹어 세 시간 기다려 진찰받은 병명 노환 의사가 갑자기 상냥해지면 불안해 만보계 절반 이..

참살이의꿈 2020.10.04

친구가 / 이시카와 도쿠보쿠

친구가 모두 훌륭해 보이는 날엔 꽃 사들고 돌아와 아내와 즐겼노라 이시카와 도쿠보쿠(1886-1912). 26세로 요절한 천재 시인. 짧은 생애동안 세상과 불화하고 가난에 시달리다 폐결핵으로 죽은 불행한 시인. 시인은 요즈음 말로 하면 ‘루저’라고 불렸을까? 아내마저 생활고로 집을 나간 뒤 시인은 자살을 결심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어머니와 아내 역시 시인과 비슷한 시기에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남은 두 딸도 어린 나이에 모두 폐결핵으로 죽는다. 이 시에서는 고단한 현실을 초월하려는 자족의 경지가 엿보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인생의 본원적인 슬픔 같은 게 느껴진다. 승화된 정신만으로는 이겨내기 힘든 현실의 벽 같은 것. 이시카와는 짧은 단가(短歌)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긴 일본의 국민시인이다. 시인 백석(白石)..

시읽는기쁨 2009.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