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작가 4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어느늦은 저녁 나는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그때 알았다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 문학상을 발표하며 한강 작가의 소설을 '시적(詩的) 산문'이라고 표현했다. 한강 작가가 시로 문단에 데뷔했으니 소설에 운문의 리듬을 지니고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작가는 대학생 때 정현종 시인으로부터 '시 창작론'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30년 전이지만 정 시인은 그때 한강 학생이 준 강렬한 인상을 기억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래선지 한강의 이 시는 정 시인의 시풍과 닮지 않았나 싶다. '흰' 공기, '흰' 밥, '흰' 김이 주는 이미지는 우리 존재의 본질과..

시읽는기쁨 2024.10.15

축!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그저께 저녁(2024/10/10) 컴퓨터 화면에 속보가 떴다.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 작가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했다는 보도였다. 이게 무슨 일?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가 금방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아,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구나! 이번 수상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한때는 노벨 문학상 발표일이 되면 유력한 수상자로 기대되던 시인의 집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나도 시간에 맞추어 소식을 기다렸다. 여러 해 동안 공염불이 되자 열기가 시들해졌고 이젠 아예 관심이 사라졌다. 그러던 차에 마른하늘의 벼락처럼 낭보가 터진 것이다. 한림원에서는 수상 이유로 한강 작가의 글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력한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의 폭력성과..

길위의단상 2024.10.12

괜찮아 /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시읽는기쁨 2017.12.27

채식주의자

유명 문학상을 받은 작품과 독자가 받는 감동이 비례하지는 않는다. 기대가 커서인지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럴 때는 전문가는 역시 보는 눈이 다르구나, 하고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올봄에 한강은 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 영미권에서는 꽤 권위 있는 상인 것 같다. 한국 작가가 세계적인 상을 받은 소식은 모두를 기쁘게 했다. 경제나 스포츠 분야에서의 성취에 비해 문학이나 사상 같은 정신적인 면에서는 많이 뒤처져 있었다. 수상을 반기는 건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는 수상 소식을 들은 뒤에 책을 사서 읽어 보았다. 그런데 느낌을 글로 옮기려니 굉장히 막막했다.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소설이 품고 있는 함의를 읽어내기가 내 수준으로는 어려웠다. 큰 상을 받은 작품을 내 멋대로 ..

읽고본느낌 201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