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에 스톡홀름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국내 정세가 급박하여 관심을 덜 받고 지나갔지만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장면은 감격이었다. 시상식 전후로 수상 소감과 강연도 있었다.
최근에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이 작가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문체로 애절하게 그려졌다. 그래서 더 슬펐는지 모른다. 잔인한 폭력과 고통, 동시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국가 폭력은 쉬지 않고 반복되어 나타난다. 책에 나오는 대로 폭력에 노출된 인간은 방사능 피폭처럼 오랜 기간 인간성을 파괴한다. 광주는 수없이 되태어나고 인간을 살해한다. 작금에 윤석열에 의해 저질러진 비상계엄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인상적인 서술 중 하나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총알이나 죽음도 막지 못하는 이 인간 내면의 양심의 힘에서 작가는 희망을 발견했는지 모른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고,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고,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고 작가는 쓴다.
노벨상 기념 강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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