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7

나는 5.18을 왜곡한다 / 최진석

지금 나는 5.18을 저주하고, 5.18을 왜곡한다. 1980년 5월 18일에 다시 태어난 적이 있는 나는 지금 5.18을 그때 5.18의 슬픈 눈으로 왜곡하고 폄훼한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면서 그들에게 포획된 5.18을 나는 저주한다. 그 잘난 5.18들은 5.18이 아니었다. 나는 속았다. 금남로, 전일빌딩, 전남도청, 카톨릭센터, 너릿재의 5.18은 죽었다. 자유의 5.18은 끝났다. 민주의 5.18은 길을 잃었다. 5.18이 전두환을 닮아갈 줄 꿈에도 몰랐다. 나는 속았다. 3.1, 4.19, 6.10, 부마항쟁의 자유로운 님들께 동학교도들의 겸손한 님들께 천안함 형제들의 원한에 미안하다. 자유를 위해 싸우다 자유를 가둔 5.18을 저주한다. 그들만의 5.18을 폄훼한다. 갇힌 ..

시읽는기쁨 2020.12.25

담양 정자와 창평 슬로시티

무등산에 오르러 광주에 가는 길에 담양에 들러 면앙정, 송강정, 식영정의 세 정자와 창평 슬로시티를 찾다. 면앙정.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있다. 중종 28년(1533), 관직에서 물러난 송순(宋純, 1493~1582)이 고향인 이곳에 면앙정을 짓고 학문을 토론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던 곳이다. 송강정(松江亭).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있다. 선조 17년(1584), 대사헌으로 있던 정철(鄭澈, 1536~1593)은 당쟁의 와중에 이곳에 물러와 4년동안 지냈다. 원 이름은 죽록정(竹綠亭)이다.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을 여기서 지었다. 고등학생일 때 '사미인곡'을 배우며 여성적이며 섬세한 가사를 쓰는 정철의 이미지가 후에 그의 행적을 알고난 뒤에는 많이 혼돈스러워졌다. 기축옥사에서 반대..

사진속일상 2013.01.12

26년

1980년 5월 광주의 그날로부터 26년 뒤인 2006년, 가족을 잃은 세 사람이 대기업 회장의 지원 아래 '그 사람'을 처단하기 위한 복수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그리고 미진이 쏜 최후의 총성 한 발과 함께 화면은 어두워진다. 우리는 현대사에서 광주항쟁이라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가족을 잃고 삶이 망가진 사람들의 사무치는 심정을 국외자인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영화에서 대변하고자 하는 복수혈전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영화를 보면서 그분들의 아픔에 진하게 공감되었다. 미진이 홀로 서울 도심에서 결행한 1차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영화에서 작전 설계자인 김갑세 회장의 말에서 나오듯이 희생자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가해자의 참회일 것이다. 용서와 화해란 가..

읽고본느낌 2012.12.13

[펌] 광주의 정신

얼굴은 본적이 없지만 이따금 이메일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니 알 수 있는 책이나 사이트를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좀 의외였습니다. 그는 요즘치곤 꽤 반듯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는 대학생인데 어떻게 광주를 모를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습니다. 지금 대학생이면 1980년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아이였으니 말입니다. 당시 고3이었고 청년 시절 내내 광주를 품고 살았던 저희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저와 비슷한 세대이면서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태”라고 할 때는 “사태”인 줄 알고 “항쟁”이라고 하니 “항쟁”인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무..

길위의단상 2012.05.18

묵념 5분 27초 / 황지우

- 묵념 5분 27초 / 황지우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많은 얘기를 한다. 침묵이 웅변보다 더 많은 걸 말할 때가 있다. 여기서 '5분 27초'는 광주항쟁에서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유혈 진압된 5월 27일을 의미한다. 우연히도 그날 즈음인 오늘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렸다. 광주의 죽음과 노무현의 죽음에는 공통된 원인자가 있다. 그 거대한 뿌리를 직시하고 분노해야 할 때다. 건망증 환자처럼 시간이 흐른다고 다시 잊어서는 안 된다. 노 대통령은작은 비석 하나를 세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비석의 비문을 황지우 시인이 쓴다고 한다. 작은 비석에 들어가는 작은 문장이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이 시처럼 아무 말이 없는 침묵도 한 방법이 아닐까...

시읽는기쁨 2009.05.29

외면한 자의 부끄러움

'화려한 휴가'를 보았다. 영화의 몇 장면에서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당시 실제 상황은 영화의 묘사보다도 더 비참했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영문도 이유도 모른 채 죽고 다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작은 소망들은 산산히 부서진다.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영화다. 1980년 그때에 내 나이는 스물여덟,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보도로 접하는 광주의 모습이 사실인 줄만 알고 믿었던 여느 사람과 똑 같았다. 그 뒤로 광주의 실상을 전하는 사진전을 보고얘기도 들었지만 반신반의하며 애써 외면했다. 그저 남의 땅의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한없이 부끄럽다. 당시 작전에 투입되었던 군인들이 2만 명 가까..

읽고본느낌 2007.08.14

그날 / 정민경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시읽는기쁨 2007.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