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 임보

샌. 2009. 10. 14. 08:32

새는 날개로 허공을 받치고 떠오를 때 새다

새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 반짝이는 눈으로 지상을 응시할 때 새다

 

버려진 먹이를 찾아 인가의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먹다 남은 먹이를 얻으려 육식동물의 곁을 어정거리는 놈들은 이미 새가 아니다

 

철원에 가서 겨울 독수리 떼를 보았는데

인간들이 던져둔 고기에 취해 검은 쉼표들처럼 빈 들판에

날개를 접고 있었다

 

상원사에 가서 고운 멧새들을 보았는데

방문객들의 손바닥에 올라 스스럼없이 모이를 쪼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새가 아니라 가금(家禽)

언젠가는 닭처럼 날개를 잃게 되리라

간악한 인간의 손들이여

새의 날개를 꺾지 말고

그들을 맑은 날개 위에 올려라

 

-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 임보

 

지난 여름, 광릉수목원에서 기르던 늑대가 우리를 탈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사살되어 차가운 시체로 돌아왔다. 늑대의 야성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인간의 손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했다. 만약 다시 붙잡혀왔다면 그는 늑대가 아닐 것이다. 늑대의 눈은 결코 인간에게 순치될 수 없는 원시의 생명력이 번뜩이고 있다. 우리에 갇힌 늑대는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고 시도해야 한다. 늑대는 애완견이 아니다. 그러나 닭을 보라. 닭은 닭장 문을 열어주어도 나갈 줄을 모른다. 그들은 철저히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서 나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시인은 길들여진 인간에 대해 말한다. 우리도 한때는 바람이었고 하늘이었다. 영혼은 신의 숨결이었고, 영광의 빛이었다. 그러다 어느 때, 지상의 양식을 찾아 헤매면서 작아지고 작아졌다. 바람도 잊어버리고, 하늘도 잊어버리고, 그리고는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난장이들이 되었다. 그들은 지상의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맨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 무엇인가에 길들여져 있음도 알지 못한다. 좁고 악취 나는 우리는 그들의 천국이다.

 

나는 늑대가 좋아졌다. 인간을 다시 날개 위에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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