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개사돈 / 김형수

샌. 2009. 10. 1. 09:02

눈 펑펑 오는 날

겨울 눈 많이 오면 여름 가뭄 든다고

동네 주막에서 술 마시고 떠들다가

늙은이들간에 쌈질이 났습니다

작년 홍수 때 방천 막다 다툰

아랫말 나주 양반하고 윗말 광주 양반하고

둘이 술 먹고 술상 엎어가며

애들처럼 새삼 웃통 벗고 싸우는데

고샅 앞길에서 온 동네 보란 듯이

나주 양반네 수캐 거멍이하고

광주 양반네 암캐 누렁이하고

그 통에 그만 흘레를 붙고 말았습니다

막걸리 잔 세 개에 도가지까지 깨뜨려

뒤꼭지 내몰이에 성질 채운 주모 왈

오사럴 인종들이 사돈간에 먼 쌈질이여 쌈질이

 

- 개사돈 / 김형수

 

요사이 느닷없는 개논쟁이 붙었다. A 씨가 신문에 신임 총리를 두둔하며 야권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자, B 씨가 노욕과 변절이 불쌍하다는 글을 썼다. 그러자 C 씨가나서서는 B 씨를 향해 '개소리'하지 말라며 비난했다. 다시 B 씨는 C 씨에게 '개만도 못한 수준의 사람들은 개소리를 들어도 싸다'고 되받아쳤다.싸움 구경이 재미있다는데 명망 높은 인사들의 싸움판은 더 재미있다. 아마 이 쌈질을 멈추기 위해서는 진짜 개라도 와서 짖어주어야 할 것 같다.

 

시가 재미있지 않은가. 별로 웃을 것 없는 세상에서 이렇게라도 웃는다. 개사돈이란다, ㅎㅎㅎ.... 아마 주모였다면 이렇게 일갈했을지 모른다. "오사럴 잡것들이 거멍이나 누렁이나 그 소리가 그 소리구먼 먼 지랄이여 지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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