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종시(終詩) / 박정만
몇 해 전, 박정만 시인을 그린 TV 다큐멘터리를 아프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 시단에서 가장 순수하고 낭만적인 시인으로 꼽혔던 시인은 한수산 필화사건에 얽혀 단지 친구였다는 이유만으로 보안사에 끌려가 호된 고초를 겪는다. 야만의 시대였던 1981년의 일이었다. 폭력과 고문으로 심신이 망가진 시인은 술에 의지해 살며 무너져 갔다. 직장도 잃고, 아내도 떠나가고,모든 것을 잃은 그는 세 자식을 남겨둔 채 홀로 죽어갔다. 연약한 영혼이 감당하기에 한 시대는 너무나 잔인했다. 시인은 죽기 전 몇 달 동안 술을 양식으로 삼으며신 들린 듯 수백 편의 시를 썼다고 한다. 제목이 없는 이 시도 그가 죽고난 뒤 발견된 것이다.
그때 권좌에 앉아 호령하던 사람은 아직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올 봄, 또 다른 한 사람은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 브레히트의 말대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걸까. 내 한 몸 별 탈 없음을 다행이라 자위할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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