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펑펑 오는 날
겨울 눈 많이 오면 여름 가뭄 든다고
동네 주막에서 술 마시고 떠들다가
늙은이들간에 쌈질이 났습니다
작년 홍수 때 방천 막다 다툰
아랫말 나주 양반하고 윗말 광주 양반하고
둘이 술 먹고 술상 엎어가며
애들처럼 새삼 웃통 벗고 싸우는데
고샅 앞길에서 온 동네 보란 듯이
나주 양반네 수캐 거멍이하고
광주 양반네 암캐 누렁이하고
그 통에 그만 흘레를 붙고 말았습니다
막걸리 잔 세 개에 도가지까지 깨뜨려
뒤꼭지 내몰이에 성질 채운 주모 왈
오사럴 인종들이 사돈간에 먼 쌈질이여 쌈질이
- 개사돈 / 김형수
요사이 느닷없는 개논쟁이 붙었다. A 씨가 신문에 신임 총리를 두둔하며 야권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자, B 씨가 노욕과 변절이 불쌍하다는 글을 썼다. 그러자 C 씨가나서서는 B 씨를 향해 '개소리'하지 말라며 비난했다. 다시 B 씨는 C 씨에게 '개만도 못한 수준의 사람들은 개소리를 들어도 싸다'고 되받아쳤다.싸움 구경이 재미있다는데 명망 높은 인사들의 싸움판은 더 재미있다. 아마 이 쌈질을 멈추기 위해서는 진짜 개라도 와서 짖어주어야 할 것 같다.
시가 재미있지 않은가. 별로 웃을 것 없는 세상에서 이렇게라도 웃는다. 개사돈이란다, ㅎㅎㅎ.... 아마 주모였다면 이렇게 일갈했을지 모른다. "오사럴 잡것들이 거멍이나 누렁이나 그 소리가 그 소리구먼 먼 지랄이여 지랄이."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시 / 박정만 (0) | 2009.10.09 |
---|---|
삼류들 / 이재무 (2) | 2009.10.06 |
아이고 문디야 / 권기호 (0) | 2009.09.28 |
아름다운 위반 / 이대흠 (1) | 2009.09.24 |
제비 / 최종진 (4) | 2009.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