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삼류들 / 이재무

샌. 2009. 10. 6. 09:13

삼류는 자신이 삼류인 줄 모른다

삼류는 간택해준 일류에게, 그것을 영예로 알고

기꺼이 자발적 헌신과 복종을 실천한다

내용 없는 완장 차고 설치는 삼류는

알고 보면 지독하게 열등의식을 앓아온 자이다

삼류가 가방끈에 끝없이

유난 떨며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이 성희롱인 줄도 모르고

일류가 몸에 대해 던지는 칭찬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우쭐대는 삼류

삼류는 모임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얻을 게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류와 어울려 사진을 박고 일류와 더불어 밥을 먹고

일류와 섞여 농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일류가 되어간다고 착각하는 삼류

자신이 소모품인 줄도 모르고 까닭 없이 자만에 빠지는

불쌍한 삼류 사교의 지진아

아 그러나, 껍질 없는 알맹이가 없듯

위대하게 천박한 삼류 없이

어찌 일류의 광휘가 있으랴

노래를 마친 삼류가 무대를 내려서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삼류의 얼굴에 꽃물이 든다

삼류는 남몰래 자신이 여간 대견하고 자랑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사실 열렬한 박수갈채는 노래 솜씨보다 월등한

그녀의 미모에게 보낸 것인데 그 사실을 그녀만 모르고 있다

삼류는 일류들이 앉아 있는 맨 앞줄을 겸손하게 지나서

이류들이 앉아 있는 중간을 우아하게 지나서

삼류들이 뭉쳐 있는 후미에 뽐내듯 어깨 세우고 앉는다

삼류는 생각한다 이렇게 열심히 노래 부르다 보면

언젠가 저 중간을 넘어 저 맨 앞줄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날이 올 거야

삼류는 가슴을 내밀어 숨을 크게 마셨다 내뿜는다

그러나 그날은 언제 올 것인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삼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온다

그녀도 세상은 이미 각본대로 연출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삼류는 어제 그러하였고 오늘 그러하였듯

내일 또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를 것이다

그러다 자신의 자리와 역할이 일류를 위한 영원한 들러리요, 삐에로요,

악세사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무슨 회한처럼 문득 깨달을 것이다


- 삼류들 / 이재무


시인은 일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삼류들을 조롱하지만 실제는 일류라 부르는 인간들의 부도덕성, 그리고 사회 구조의 부조리함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런 사다리 구조의 사회에서는 기득권층이라 불리는 일류들과 거기에 오르고자 하는 이류, 삼류들의 희망 없는 버둥거림이 있을 뿐이다. 어리석은 삼류들은 자신들도 일류가 될 수 있다는 가련한 소망을 품고 오늘도 전쟁터에 나간다. 그리고 일류들이 던져주는 떡고물에 감지덕지한다. 그것이 악한 사회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줄도, 일류들의 음모인 줄도 눈치 채지 못한다. 삼류는 그래서 삼류다. 그들은 가짜 일류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그들은 니체가 말하는 ‘시장의 파리떼’이고 속물들이다. 세상은 소수의 교활한 일류들과 다수의 어리석은 삼류들로 되어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란 말을 믿고 싶다. 인간을 어찌 일류와 삼류로 나눌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품격은 달라진다. 한 인간의 기품은 많이 배웠다고, 또는 많이 가졌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앞서 가려는 것도 좋고, 잘나 보이려고 애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어느 때, 어느 자리에 있던지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잃지 않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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