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아이고 문디야 / 권기호

샌. 2009. 9. 28. 10:47

태백산 돌기로 내려온 지판은 오래전 문경암층 방향 틀어

바람소리 물소리 이곳 음질 되어 영일만 자락까지 퍼져있었다

 

어메요 주께지 마소 나는 가니더 미친년 주것다 카고 이자뿌소

부푼 배를 안고 부풀게 한 사내 따라

철없는 딸은 손사래치며 떠나는데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라 카노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키고

인연의 삼배끈 황토길 놓으며 어메는 목젖 세하게 타고 있었다

 

호박꽃 벌들 유난스런 유월 느닷없이 남의 살 제 몸에 들어와

노을빛 먹구름 아득히 헤맨 딸에게 어메는 연신 눈물 훔치며

맨살 드러낸 산허리 흙더미 내리듯이 마른 갈대소리 갈대가 받듯이

토담에 바랜 정 골짜기에 쌓을 수밖에 없는데

 

세월 흘러도 신생대 암층 고생대 지층이 받쳐왔듯이

풍화된 마음 먼 훗날 만나게 되면

 

아이고 이 문디 우째 안죽고 살았노 아이고 어메요

우리 어메요

맨살 부비는 산허리 소리 반갑게 울부짖는 것이다

 

- 아이고 문디야 / 권기호

 

옆집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강한 부부가 산다. 목소리로 추정하건대 60대 중반은 넘긴 것 같다. 비상시에 쉽게 이용하라고 설치된 베란다의 칸막이가 얇고 틈이 많아서옆집의 사는 모습을 소리로 다 알 수 있다.그런데 3 년째 되도록 아직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아파트 출입구가 다르니 서로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게 그렇다. 그런데 이 분들의목소리가 얼마니 큰지 처음에는 매일 싸우는 줄 알았다. 둘이서 티격태격이라도 하는 날이면 천둥 소리가 저리 가라다. 심한 날은 우리 편에서 아예 창문을 닫아야 한다. 경상도 사람들은 부부싸움할 때도 조심해야겠다.

 

어릴 때 '문디 자슥'이나 '문디 가스나'라는 말을 귀에 달고 살았다. 경상도에서 이 말은 욕이 아니라 친근감의 표현이다.또 자식을 이뻐하면 귀신의 시샘을 받을까 봐 일부러 험한 말을 써야한다는 미신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전라도에서 흔히 듣는 '썩을 년'과 비슷하다고 할까. 사투리에 녹아있는고유한 정서는 다른 말로는 표현될 수가 없다. "이 문디야"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한과 서러움, 애틋한 감정을 어찌 표준말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전국적으로 단일 생활권이 되다 보니 고유어도 순화되고 지방 특성도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경상도 사투리가 다른 사람에겐시끄럽고 투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촉매가 된다. 그래서 옆집의 소음공해마저 어떤 때는 정겹고 고마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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