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다스림이 있었던 고대 원시공산사회에서는
어진 자를 높이거나 능한 자를 부릴 필요도 없었다.
윗사람이란 표준일 뿐이었고 백성은 야생의 사슴이었다.
단정했으나 의(義)를 행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서로 사랑했으나 인(仁)을 행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성실했으나 충(忠)을 행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합당했으나 신의(信義)를 지켰다고 깨닫지 못한다.
준동할때 도우러 갔으나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행적도 자취가 없고 사업도 전해짐이 없다.
至治之世
不尙賢不使能
上如標枝 民如野鹿
端正而不知以爲義
相愛而不知以爲仁
實而不知以爲忠
當而不知以爲信
준動而相使
不以爲賜
是故行而無跡 事而無傳
- 天地 9
기세춘 선생은 장자가 그리는 이상세계를 원시공산사회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인위적인 체제나 국가가 없는 무치(無治)의 공동체다. 사람들은 사유재산이 없이 문명 이전의 자연 상태 그대로 살아간다. 사람들의 심성은 무지무욕하고, 탐욕이 없으니 다툼이 없다. 인(仁)이나 의(義), 충(忠)을 모르지만 사랑과 정이 가득한 세상이다. 장자가 꿈꾼 이상향은 이런 것이었던 것 같다.
장자 당시의 사회상이 얼마나 혼돈한 난세였으면 이런 세상을 꿈꾸었을까 상상이 된다. 그러나 이런 세계관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몽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당장 직면한다.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장자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의 생각은 늘 몽상으로 치부되어 왔다.
이 글을 쓰다가 보니 존 레넌의 '이매진'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물질중심의 가치관에 매몰되어서 안 그래도 상상력이 빈곤한 시대에 이런 노래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꿈마저 없다면 험한 세상을 견뎌내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국가라는 것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건 어려운 일도 아니죠
죽이는 일이나 목숨을 바쳐야 할 일도 없고
종교도 없다고 생각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당신은 날 몽상가라 부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니랍니다
언젠가 당신도 동참하길 바래요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되어 살아가겠죠
소유물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탐욕을 부리거나 굶주릴 필요도 없고
형제애가 형성되겠죠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함께 공유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