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80]

샌. 2009. 7. 30. 07:00

양자와 묵자는 비로소 홀로 발돋음을 하고는

스스로 뜻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말하는 얻음이 아니다.

얻은 것이 곤궁함인데 그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새장 속에 갇힌 비둘기나 올빼미도

역시 뜻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而楊墨乃始離趾

自以爲得

非吾所爲得也

夫得者困 可以爲得乎

則鳩효之在於籠也

亦可以爲得乎

 

- 天地 11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고, 봉우리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는 길만이바른 길이고, 자신이 오르는 봉우리만이 최고봉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교든 이념이든 그 어떤 깨달음이든 진리독점주의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것도 없다. 그것은 자신이 걷는 길만이 정상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진리독점주의는 사람을 편협하고 폐쇄적이며 공격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세상사를 참과 거짓, 빛과 어둠 같이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본다. 내가 가는 길은 옳고, 다른 길은 내가 가는 길이 아니기에 틀렸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진보나 보수의 맹점도 여기에 있다. 말로는 소통을 내세우지만 결코 자신들이 쌓은 믿음의 성문을 열려고는 하지 않는다. 내가 옳으니 네가 항복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진리의 확신이 주는 비극이다. 자신의 세계에 갇히면 통섭의 지혜를 잃고 무엇이든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한다. 유사 이래 계속되어 온 역사의 비극도 종교적 진리독점주의에서 유래된 바가 크다. 진리나 구원이 하나밖에 없다는 믿음은 잘못 하면 종교적 광기를 낳는다.

 

장자가 볼 때 세상의 여러 학파들의 주장이란 게 도토리 키재기 식의 소모적 논쟁에 불과하다. 자신들은 스스로의 얻음을 얘기하지만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또 다른울타리 속의 자유에 불과하다. 물론 여기에는 장자도 예외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진리의 상대성과 스스로의 한계를 얼마나 인식할 수 있느냐에 있다. 그런 바탕 없이 자신의 세계를 유일 최고의 것으로 신봉하기 시작할 때부터 오류의 덫에 빠지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새장에 갇힌 비둘기가 뜻을 얻었다고 자만하는 것과 같다. 그는 저 넓디넓은 세계에서의 자유로운 비상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대우주의 광대무변함이야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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