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77]

샌. 2009. 7. 2. 10:49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고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의 마음이 생기고

가슴속에 기계의 마음이 생기면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고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면 정신과 성품이 안정되지 못하고

정신과 성품이 불안정하면

도가 깃들 곳이 없다고 했소.

내가 두레박 기계를 몰라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는 것이오.

 

有機械者 必有機事

有機事者 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 則純白不備

純白不備 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吾非不知

羞而不爲也

 

- 天地 8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유세를 마치고 진(晉) 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를 만났다. 그는 옹기그릇을 가지고 들고나며 우물에서 물을 퍼내고 있었다. 자공이 농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기계를 쓴다면 하루에 백 두렁의 밭에 물을 줄 수 있습니다. 힘은 적게 들고 효과는 클 터인데 왜 그것을 쓰려고 하지 않는지요?" 위의 글은 자공의 질문에 대한 농부의 대답이다.

 

'機心'[기계의 마음]은 장자에서 중요한 개념인 동시에 현대문명을 돌아보는 준거로써도 유용하다. 그것은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강조하는 생산성과 효율성, 그리고 경쟁력의 허구를 드러내준다. 기심(機心)은 기계를 이용하여 편리함을 구하는 마음인데, 인간 소외라든가 비인간화 현상이 여기에서 기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의 진원지인데, 기계에 의존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도구화 되고 부품화 된다. 인간이 그러한데 하물며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기계를 이용하여 남는 시간이 인간에게 여가와 휴식을 줄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도리어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 싸우게 만든다. 교통기관의 발달은 이동시간을 엄청나게 단축시켰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은 바빠지고 조급해졌다. 남는 시간이 결코 내적인 행복이나 정서적 기쁨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자연과의 조화를 잃으면서 인간의 삶은 더욱 왜소해지고 물질에 의존적이 되었을 뿐이다.

 

장자의 기심(機心)에 대한 경고는 2천여 년 전 장자 시대보다 오히려 지금에 더욱 유효하다. 현대 문명 자체가 기심(機心)의 문명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인은 기심(機心)에 사로잡혀서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을 잊어버렸다. 경쟁이나 욕망 추구에서 깨달음과 인성에 가치를 두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으면 지금의 위기는 극복할 길이 없다고 본다. 물질에서 인간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위기에 대한 어떤 해법도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이기적 욕망의 추구가 아니라 불편하고 가난하더라도 함께 사는 따스한 세상이되어야 한다. 평생 제주도 바다에서 물질을 하며 살아온 여든이 넘은 해녀 할머니에게 물었다. "스킨스쿠버 장비를 사용하면 더 많은 수확을 하실 텐데요?" "그걸로 하면 한 사람이 100명 하는 일을 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안 하세요?" "그렇게 하면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살라고?" 이 할머니의 마음이 바로 장자가 말하는 순백의 마음 바탕일 것이다. 이상사회의 실현은 우리 모두가 이 할머니의 마음을 회복하는데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그것이 바로 기심(機心)을 비판하며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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