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사기열전

샌. 2012. 3. 9. 08:14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고 있다. 김원중 선생이 옮기고 민음사에서 펴낸 건데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번역본 중 가장 잘 된 책이라고 한다. 문장도 유려하고 고증이나 해설이 잘 되어 있다.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 권을 읽었다.

 

<사기(史記)>는 상고시대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한 무제 때까지의 중국 역사를 다룬다. 본기(本紀) 12편, 표(表) 10편, 서(書) 8편, 세가(世家) 30편, 열전(列傳) 7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열전은 인물 중심으로 역사를 풀어간다. 주나라 붕괴 후 등장한 제후국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은 전국칠웅[진(秦), 한(韓), 위(魏), 제(齊), 초(楚), 연(燕), 조(趙)]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열전은 역사적 정보가 아니라 인물의 특징과 의미를 전하는데 무게를 두었다. 각 열전마다 끝에 '태사공은 말한다'를 붙여 사마천 자신의 평가를 적은 게 특징이다.

 

<사기열전>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배운다. 2천여년 전에 세상을 살았던 다양한 인물들을 보면서 삶의 교훈을 얻는다. 사마천이 열전을 쓴 이유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는 춘추전국시대로 세상은 약육강식과 권력욕, 갈등이 극한에 달한 혼란기였다. 이때 시대에 맞선 사람도 있었고, 순응한 사람도 있었고, 한 발 비켜선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혼돈의 시대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비극적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사마천이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보았는지를 알 수 있다.

 

열전 첫 편이 '백이열전(伯夷列傳)'인데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이야기를 짧게 다루고 있다. 대신에 이 사건을 보는 사마천 자신의 견해가 길게 나온다. 공자는 백이와 숙제를 칭찬하며 그들이 인(仁)을 구하여 얻었고 원망함이 없었다고 했지만 사마천은 의문을 가진다. 세상사를 보면 착한 사람은 재앙을 입고, 나쁜 사람이 복을 누린다. 사마천은 대표적으로 안연과 도척을 든다. 안연은 공자의 제자로 가장 학문을 좋아했지만 늘 가난해서 술지게미와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었다. 반면에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잔인한 짓을 했지만 제 마음대로 살면서 수명을 다 누리고 죽었다. 한평생을 호강하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공평하고 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사마천은 수많은 인물들을 조사하면서 이런 사실이 자신을 무척 당혹스럽게 한다고 썼다. 그리고 묻는다. "하늘의 도리가 과연 옳은가? 그른가?"[天道是非]

 

<사기열전> 첫 권에는 서른다섯 편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이사열전(李斯列傳)'을 소개한다.

 

이사(李斯)는 진시황을 도와 천하통일을 이루고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그는 진나라에 큰 공을 세웠지만 조고의 음모에 동조하고 분서갱유 등 가혹한 정책을 펼쳐서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 결국은 오형(五刑)을 받아 죽었고, 집안사람들까지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다. 사마천은 이사가 일생에서 네 차례 탄식한 걸 중심으로 드라마틱하게 얘기를 전개한다.

 

이사가 젊었을 때 지위가 낮은 관리로 있었는데, 관청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놀라서 무서워하는 꼴을 보았다. 그러나 이사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있는 쥐들은 쌓아 놓은 곡식을 먹으며 큰 집에 살아서 사람이나 개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는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 이것이 첫 번째 탄식으로 이를 계기로 이사는 순경에게서 제왕의 기술을 배우고, 초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가서 자신의 뜻을 펼친다.

 

이사는 결국 진나라의 2인자인 승상이 되었고, 통일 제국의 법령과 제도가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그의 아들 딸들은 모두 진나라 왕가의 친족이 되었다. 이사의 맏아들이 이유(李由)인데 삼천군의 태수로 있었다. 이유가 휴가를 얻어 함양으로 돌아왔을 때 이사가 집에서 술자리를 열었다. 이때 온갖 관직에 있는 우두머리가 모두 나와 장수를 기원했는데, 대문 앞에는 그들이 타고온 수레가 수천 대나 되었다고 한다. 이사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아아! 나는 순자가 '사물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한 말을 들었다. 지금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이가 없고, 부귀도 극에 달했다고 할 만하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하거늘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구나." 이것이 이사의 두 번째 탄식이다.

 

시황제 37년에 황제는 제국 순시 중에 사망했다. 이때 곁에서 시중 든 사람이 이사와 환관 조고(趙高)였다. 시황제는 맏아들 부소(扶蘇)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유지를 남겼으나, 조고는 시황제 막내아들 호해(胡亥)를 앉히려고 공작을 했다. 시황제의 죽음을 숨기고 유지를 위조해서 부소를 자결토록 했다. 이사는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결국은 조고의 모의에 동참했다. 이때 이사는 하늘을 우러러 한탄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 나 홀로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죽을 수도 없으니 어디에 내 목숨을 맡기랴?" 이것이 이사의 세 번째 탄식이다.

 

그후로 이사는 2세 황제의 철권통치에 협력하면서 부귀를 계속 누렸다. 형벌을 가혹하게 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아방궁을 짓고 길을 만드느라 노역이 그치지 않고 세금이 많아지자 원성이 커지면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2세 황제는 더욱 강압적으로 나갔다. 황제의 뒤에는 환관 조고가 모든 정치적 사안을 결정하고 있었다. 조고는 음모를 꾸며 이사마저 숙청하려고 했다. 모반의 죄를 뒤집어쓴 이사는 결국 2세 황제 2년 7월에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허리를 잘리는 형을 받았고 삼족이 모두 죽음을 당했다. 이사는 죽기 전 함께 잡힌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 너와 함께 다시 한 번 누런 개를 끌고 상채 동쪽 문으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겠구나." 이것이 이사의 네 번째 탄식이다.

 

이사의 일생은 인간의 흥망성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각고의 노력으로 사다리의 정상에 올랐고 너무 과욕을 부리다가 한 순간에 추락했다. 결국은 그가 의지했던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자신과 더불어 삼족이 멸족되는 비운을 맞았다. 그는 어떻게 처신해야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지를 아는 냉혹한 현실주의자였다. 진시황의 최측근이 되어 권력을 장악하고 위세를 떨쳤지만 정도를 걷지 않았기에 역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사기열전>에 소개되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운다. 역사 속에서 부침했던 인물들을 기록하며 사마천이 느꼈을 안타까움, 울분,허무감 등을 책을 읽으며 같이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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