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

샌. 2009. 4. 13. 10:44

선운사를 지나 도솔암으로 가는 길은 부드럽고 따스하다. 맑고 착한 산길이다. 어떤 길은 두 번째 찾으면 식상해지기도 하는데 이 길은 늘 느낌이 새로우면서 포근하다. 고창에 간 길에 그 길을 다시 걸었다. 어느 시인이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을 이렇게 노래했다.

 

만약 어느 여자에게 이처럼

아름다운 숲속 길이 있다면

난 그녀와 살림을, 다시 차리겠네

개울이 오묘한 그녀에게

소리가 나는 자갈길을 깔아주고

군데군데 돌무덤을 예쁘게 쌓겠네

아침이면 노란 새소리로 풀꽃들을 깨우고

낮에는 이깔나무 잎으로 하늘을 경작하다가

천마봉 노을로 저녁밥을 짓겠네

가을이 되면 물론 나는

삽살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며

쓸쓸한 상상을 나뭇가지 끝까지 뜨겁게 펼치겠지만

모두 떠나버린 겨울에는 그녀를 더 쓸쓸하게 하겠지

그러나 난 그녀를 끝까지 지키는 장사송(長沙松)으로 눈을 얹고

진흥굴 앞에서 한겨울을 품위 있게 나겠네

설혹 그녀에게 가파른 절벽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나는 그 위에 저렇게 귀여운 암자를

옥동자처럼 낳고 살 것이네

 




먼저 선운사에 들렀는데 아침이어서 경내는 조용했다. 봄의 선운사(禪雲寺)는 동백과 수선화가 먼저 떠오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자주괴불주머니와 개별꽃이 가끔씩 눈에 띄었다. 그런데 선운사와 주변에는 온통 꽃무릇을 식재해 놓아 다른 식물이 자랄 여지가 사라진 것은 아쉬웠다. 그 전에는 무척 많은 봄꽃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가을에 장관을 이루는 꽃무릇의 배후에는 이렇듯 다른 생명들의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장사송이 있는 진흥굴과 도솔암을 지나 천마봉과 낙조대에 오른 후 용문굴을 거쳐 하산했다. 선운산은 전에 도솔산으로 불렸는데 높이가 높지 않아 트레킹 코스로는 안성맞춤인 산이다. 물 속에서 형성된 거대한 퇴적 지층이 드러나 있고 특이한 모양을 한 침식 지형이 흥미롭다. 이곳은 약 600만 년 전에 융기하여 육지로 되었다고 한다.

 



용문굴(龍門窟)도 바위가 침식되어 두 개의 큰 구멍이 뚫린 모양을 하고있다. 전설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지나간 구멍이라고 한다. 이 용문굴을 지나 능선을 넘으면 서해쪽 해리로 갈 수 있다.

 

연등색이 고운 도솔암에서 붉은 꽃과 흰 꽃이 동시에 핀 기이한 매화도 보았다.

 





낮이 되면서 선운산을 찾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졌다. 같은 길이지만 사람과 사람 소리로 가득하니 아침과는 또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무래도 이 길의 진수는 호젓할 때만이 맛 볼 수 있는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봄맞이꽃, 구슬봉이, 산자고가 반가웠다. 꽃무릇 틈새에서 자라는 모습이 더욱 애틋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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