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샌. 2009. 4. 4. 08:32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 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지난번의 시산회에서 읽은 것이라며 친구가 이 시를 보내왔다. 친구는 등산할 때마다 시 한 수를 읊는 등산모임에 나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가는 게 벌써 100 회가 넘었다 한다. 산 정상에서 이 시를 듣는 느낌은 어땠는지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래, 씁쓸한 웃음 지으며 모든 시름 산바람에 날려버릴 수도 있겠다.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 살아옴의 상처, 모든 아픔에 대해서 킥킥거리며 당신을 불러 볼 수도 있겠다. 참 좋은 당신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참혹마저도 킥킥거릴 수 있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다. 삶이 고단하고 비루하고 천박할지라도, 빈 껍데기처럼 공허할지라도, 혼자서 먼 집을 찾아가는 쓸쓸한 길에, 그러나 킥킥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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