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랑탕 트레킹(12)

샌. 2009. 2. 20. 11:22

약 기운 탓이었는지 잠을 맛있게 푹 잤다. 덕분에 몸이 가뿐하고 개운해졌다. 어제까지 끈질기게 괴롭히던 몸살기도 사라졌다. 오늘은 쿠툼상까지 가는 날이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7시에 곱테를 출발했다. 처음에는 고도 300m 정도를 올라가야 했으나 그 뒤부터는 계속 능선을 따라가는 내리막이었다. 확 트인 전망과 함께 아름다운 설산을 왼쪽으로 끼고 이어지는 흙길은 완만하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고도가 낮아지니 다시 다양한 모습의 식물들이 모습을 보였다. 특이한 모양의 나무들이 눈길을 끌었고, 새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반갑게도 길가에는 예쁜 보랏빛 꽃도 피어 있었는데, 고도 3천m 부근에서 특히 많이 있었다. 현지 가이드한테 이름을 물으니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우리들 행렬은 자연스럽게 선두 여섯 명, 후미 여섯 명으로 나누어졌다. 후미는 나를 포함한 초보 네 명에, 무릎이 아파 빨리 걷지 못하는 S와, 초보들 안내를 맡아준 J였다. 등산 베테랑인 J는 늘 뒤에서 우리들과 함께 하며 지형 안내와 조언을 해 주었다. 선두 그룹은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기다렸다가 우리들과 합류해서 기념사진을 찍곤 했다. 그렇게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며 상쾌하게 길을 걸었다.


오늘은 길도 아름답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날이었다. 연 이틀 동안의 강행군에 지친 몸이 이제 정상을 찾았다. 제일 감탄을 잘 하는 B는 연신 “Thank you, Himalaya!"를 외쳤다.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목가적 풍경에 모두들 얼굴이 환해졌다.






길 주위에는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 숲이 울창했다. 봄에 화려한 꽃이 필 때면 천상화원을 이룬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겨울철, 머릿속으로만 그 장관을 그려볼 수밖에 없었다. 어떤 곳에서는 마치 정글에 들어선 듯 크고 험상궂게 생긴 나무들이 나타났다. 여기 나무들은 줄기가 비뚤비뚤 제멋대로 자라있다. 반듯하고 단정한 나무를 보기가 어렵다. 한참을 가니 늘씬한 키다리 나무들의 숲도 있었다. 가이드는 ‘글라스 트리’라고 하는데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점심은 마긴고트(Mangengoth)에서 라면으로 했다. 식당에는 계란과 감자를 주문해서 라면과 함께 먹었다. 우리가 걷는 운동량에 비하면 식사는 좀 부실한 면이 있다. 그러나 입맛이 당기는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기에 라면은 가장 인기 있는 메뉴였다. 우리는 서울에서 일인당 라면 다섯 봉지씩을 갖고 왔기 때문에 수시로 끓여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음식을 준비한 것이 네팔 음식을 기피하는 원인이 된 측면도 있다. 아예 먹을 것이 없다면 억지로라도 네팔 음식을 먹을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겠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에 트레킹을 온다면 네팔 메뉴만으로 버텨보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그래도 이 달콤한 라면 맛은 아무래도 못 잊을 것 같다.




사람의 흔적은 이 높은 곳까지 미친다. 빙 둘러쌓은 돌 울타리가 무언가 했더니 방목하는 가축들의 임시 우리라고 한다. 마을도 보이지 않는 이곳까지 가축을 먹이려 올라온다는 것은 하루가 아니라 여러 날 동안 노숙하며 가축과 함께 생활한다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나그네가 보기에는 낭만적이라 생각되었지만 실제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참을 내려오니 드디어 밭들과 마을이 보였다. 하늘의 거처에서 마침내 인간의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오늘의 목적지인 고도 2,470m의 쿠툼상(Kutumsang)에는 해가 하늘 높이 걸려 있을 때 도착했다. 저녁까지는 천금같은 자유시간이 생겼다. 쿠툼상에는 온수가 나와서 일행은 차례대로 머리를 감았다. 그러나 나는 이틀을 더 참고 카트만두에서 샤워를 하기로 했다. 머리칼은 떡이 져 있지만 이미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였다.


홀로 마을을 산책했다. 능선을 따라 이루어진 마을은 꽤 컸다. 롯지도 여러 채가 문을 열고 있었고, 마을에는 사원, 대장간, 가게도 있었다. 이 마을에서는 진주에서 온 트레킹 팀을 다시 만났다. 진주 팀과는 트레킹 초반부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여러 차례 계속 만나고 있다. 일정이 겹치니 자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여기서 닭으로 영양보충을 한다고 했다. 잠시 후에 그들 숙소에서는 유행가 가락이 흘러 나왔다. 어딜 가나 노래와 놀기를 좋아하고 시끌벅적거리는 한국인의 속성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가 유원지나 노래방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을 위쪽에는 마오이스트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이 마을은 마오이스트가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네팔의 정치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냥 귀동냥으로 들은 것으로는 네팔 사회가 그동안 상당히 혼란했으며 지금은 국왕이 폐위되고 의회는 공산당이 다수당이 되어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군과 마오이스트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던 모양이다. 좌우대립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마치 우리나라의 해방 직후의 상황과 유사해 보였다. 지금은 좌파가 정권을 잡은 상태인데 국제적으로는 이미 역사의 유물로 변해버린 마오이즘을 내건 네팔의 상황이 이방인의 눈에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경제적 빈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정만 해 본다.


마을 언덕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쬐며 이국의 정취를 느꼈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물밀 듯 밀려왔다. 한 가족이 마을길을 지나갔다. 남자가 앞에 서고 중간에 아이가 따르고, 뒤에는 여인이 짐을 이마에 걸고 따라가고 있다. 아마 밭에 일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인지 모른다. 빈곤한 나라의 공통점은 여자가 노동의 많은 부분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하는 일까지 여자들의 몫이다. 이곳에 와서 자주 목도한 광경인데 집 짓는 현장에는 늘 여자들이 남자들과 똑같이 중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무척 안타깝게 여겨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면 전원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마을은 고요하고 햇살은 밝고 환했다. 멀리서 딸랑거리는 소들의 워낭소리가 들리더니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는 소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사람도 없고 고삐도 없이 저희들끼리 알아서 집으로 돌아간다. 여기서는 모든 가축을 그냥 놓아서 기른다. 닭도 마을길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내 어린 시절의 고향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자급자족만 가능하다면 이런 곳이야말로 무욕의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는 평화야말로 참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은 인간을 자연과 단절시킨 불행을 가져왔다. 지금은 재앙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서 자연 파괴만이 아니라 인간성의 피폐함은 심각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안은 결국 반본자연(返本自然), 즉 자연으로의 회귀밖에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는 인간의 기본 의식주 해결이라는 시급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밤에는 오랜만에 히말라야의 별을 보았다. 그동안은 너무나 지쳐서 별을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제 트레킹 막바지가 되어서 여유를 되찾은 것이다. 일행에게 짧은 지식이나마 겨울철 별자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디카로 오리온자리를 찍어 보았다. 최대 1분까지밖에 노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별들은 숫자도 적고 어둡게 나왔다. 그래도 히말라야의 별이라는데 만족한다.


별을 보며 누군가가 혼잣말로 물었다. 왜 사람들은 별을 동경할까? 주제넘게도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그건 우리가 빛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고향은 저 별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 어떤 마을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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