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충성

샌. 2009. 2. 16. 07:49

요사이 할 일 없이 집에서 지내면서 출근하는 아이들을 챙기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그러나 모성애라 부를 수 있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과 보살핌은 남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지나치다 싶은 면도 있다. 숫컷들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지극함이다.

직장에 다니는 두 아이가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때 아내는 밥과 도시락을 차려 놓고 대기한다. 본인이 아무리 아파도 자식들 밥 준비만은 거르지 않는다. 어쩌다 제대로 못 먹고 가게 되면 그렇게 속 상해 할 수가 없다. 또 날씨에 따라 옷 챙기는 것도 신경 쓰고, 마을버스 시간에 맞추어 엘리베이터 버튼까지 미리 눌러준다. 그리고 버스를 잘 탔는지 베란다에 나가 확인까지 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두 아이를 그렇게 보내야 새벽 일과가 끝난다.

어쩌다 잠이 깨어 방에 누워서 이런 과정들을 듣고 있노라면 쯧쯧 하고 혀를 차다가도 자식에 대한 사랑만은 인정해주지 않을 수가 없다. 속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함이 아니고서는 매일 저렇게 정성을 다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그런 아내에게'충성'이라고 놀리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 아내의 대답이다.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도리어 자식에게 더 잘 해 주지 못하는 것을 늘 안타까워 한다. 운전만 한다면 직장까지라도 차를 태워줄 태세다.

그러나 나로서 못마땅한 것은 여자 아이들인데 부엌일마저 시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집 가면 실컷 하게 되는 일인데 왜 미리부터 고생시키냐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다. 집에서 공주 대접을 받고 커야 결혼을 헤서도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나 어쩐다나 하는 말도 한다. 내가 볼 때는 영 이상한 논리다. 나는 아이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집안 일에 관심을 갖고 엄마을 도와주기를 바라지만 아내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솔직히 나이가 들면서 아내의 관심은 남편보다는 아이들한테로 기울어지고 있다. 생식을 마친 숫컷은 이제 여자에게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유전자를 전해 받은자식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이야말로 생물학적으로도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의무감이 지나쳐 이젠 손자를 어떻게 길러줄까까지 고민하고 있다. 여자의 자식 집착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과잉 보살핌은 자식을 나약한 인간으로 만들고 유전자의 전달 측면에서도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영리한 여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까?어찌 되었든 세상이 힘들고 살벌해질수록우리 어머니들의 자식 챙기기는 더욱 맹렬해지는 것 같다. 특히 아이들 교육에는 전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모든 것을 바쳐 올인하고있다. 또 자식에게 한 몫 남겨주기 위해 재테크에도 열심이어야 한다. 그만큼 세상이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맹목적인 자기 자식 챙기기는 결국 악순환이 되어 세상살이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는 여자의 극성이좀 자제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내의 자식 사랑을 존경하지만 그것이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성인이 된 나이를 훌쩍 지난 아이가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부모는 옆에서 지켜보는 역할만 하면 된다고 본다.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다른 집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은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박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자식에 대해서만은 도무지 의견 일치를 이루기가 어려운 현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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