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포카라에서의 열흘

샌. 2008. 7. 10. 08:49

‘데자뷰’라는 현상이 있다. 처음 가본 곳인데 전에 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거나, 처음 하는 일인데 전에 똑같은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현상이다. 현대과학에서는 뇌의 이상으로 생긴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전생의 증거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아직은 해명하지 못한 뇌의 신비라 할 수 있다. 꼭 전생과 관계되었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우리는 생활하면서 특정의 장소나 사람에 대해 특별한 친근감을 갖는 경우가 있다. 첫눈에 반하는 것과 같은 돌발적인 호감과 끌림은 사실 논리적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면 전생에서부터의 인연이 있지 않았는가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또한 전생을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신비에 감싸이게 된다.


‘포카라’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왠지 아득한 그리움을 느낀다. 포카라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글이나 말을 통해 접해왔는데, 그때마다 호기심과 함께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비록 상상속의 일이지만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포카라의 정경을 떠올리며 그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내 모습을 그렸다. 나는 포카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네팔의 히말라야 산자락 아래에 있는 도시라는 것과 큰 호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할 때 경유하는 곳이라는 정도다. 그 이상 더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도 포카라는 마치 고향처럼 따뜻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누구나가 그리고 있는 이상의 장소가 나에게는 포카라인지도 모른다. 어느 땐가 포카라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뇌리에 심어졌고, 그 뒤에 점점 신비적으로 채색되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에 김남희 씨가 쓴 책을 읽다가 다시 포카라를 만났다. 그리고 예와 마찬가지로 아늑한 그리움 속으로 빠져 들었다. 포카라가 나를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그저 막연한 동경이 포카라라는 명랑한 어감과 결합되어 생긴 호감 정도일까? 그런데 왜 하필 다른 곳이 아닌 포카라일까? 이것도 데자뷰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책에서는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포카라가 나오는데 고작 두 페이지밖에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정작 트래킹보다는 포카라에 가고 싶다는 바람이 더 강하게 생긴다. 이번만이 아니라 전에도 그랬다. 포카라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것이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열흘 정도 하고, 내려와서는 포카라에서 다시 열흘 정도 묵으며 쉬고 싶다. 아무 하는 일 없이 호수를 산책하고, 호숫가 카페에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말 그대로의 소요를 즐기고 싶다. 바로 앞으로는 눈 덮인 에베레스트의 연봉들이 신비감을 더해줄 것이다. 심심해지면 마을의 골목길을 산보하고, 가끔은 자전거를 타고 도시 넘어 시골에도 가보고 싶다. 허름한 가게에서 군것질도 하고, 순박한 네팔 사람들과 함께 웃어보고도 싶다. 그렇게 한 열흘 포카라에서 푹 쉬었다 왔으면 좋겠다.


이 바람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꿈이 이루어지면 나는 돌아와 ‘포카라에서의 열흘’이라는 제목으로 기행문을 하나 쓸 것이다. 언제 가능한지도 모르는 여행의 기행문 제목부터 정해놓았으니 나도 참 실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비록 한여름 밤의 몽상일망정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지 누가 알겠는가. 만약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포카라는 내 마음속 상상의 고향으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Wall-E  (0) 2008.09.02
님은 먼 곳에  (0) 2008.07.26
동무와 연인  (2) 2008.05.30
순교자  (0) 2008.05.21
삶을 이길 수는 없죠  (2) 2008.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