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삶을 이길 수는 없죠

샌. 2008. 4. 2. 11:45



'44 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한 부부 그랜트(고든 빈센트)와 피오나(줄리 크리스티)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다. 아내 피오나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것. 피오나는 자진해서 요양원에 입원하고, 그랜트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결정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피오나가 요양원에서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랜트는 피오나에게서 잊혀진다. 그는 둘을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절망한다. 아무리 애써도 아내의 기억을 되살릴 수 없음을 알게된 그랜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 아내를 보내주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데....'

미로스페이스에서 영화 'Away from Her'를 보았다. 70대의 노부부 사랑 이야기지만 영화를 보고난 느낌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산다는 것에 대해,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그 본질적 의미를 묻는다. 가을 바람 앞에 선 듯 뭔가 쓸쓸하고 허전해진다.

부부의 따스한 사랑은 기억상실이라는 병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치매는 44년의 긴 결혼생활을, 사랑을, 서서히 퇴색시키고 날려버린다. 사랑은 따뜻했으나 인생은 잔인할 뿐이다. 인생은 우리의 꿈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영화대사 중 하나였던 "삶은 이길 수는 없죠!"라는 말처럼 우리는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체념을 배우게 된다.

우리가 이 생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이든 때가 되면 어느 한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언젠가는 보내야 하고 떠나야 할 때가 온다. 그런 상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고 인생이 허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러함으로써 사랑할 수 있는 동안 더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려는지 모른다.

슬프고 답답하지만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이런 영화가 나는 좋다. 마지막 장면에서 피오나는 다시 남편과의 옛 기억을 떠올리고 포옹을 한다. 작은 반전이지만 그러나 둘은 다시 이별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고귀했던 사랑도 세월과 함께 묻혀져 간다. 세상사의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랜트와 피오나는 각자의 길을 다시 갈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서야 알았지만 피오나 역을 맡은 여주인공 줄리 크리스티가 '닥터 지바고'에서 라라였다고 한다. 지금 그녀의 나이 예순 일곱, 40 년의 세월차를 두고 만난 감회가 새롭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본 '닥터 지바고'였는데,곱고 품위 있게나이가 든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무와 연인  (2) 2008.05.30
순교자  (0) 2008.05.21
무서록  (2) 2008.03.31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4) 2008.03.26
화성인과 금성인  (0) 2008.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