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화성인과 금성인

샌. 2008. 3. 13. 10:45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었을 때, 아는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거나 소홀히 하고 지냈던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었다.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책의 내용 중에서 지금 기억나는 것은 화성인은 문제나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 자신만의 동굴로 숨어든다는 설명이었다. 반면에 금성인은 그런 화성인의 태도를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다는 쪽으로 해석해서 자꾸만 동굴 밖으로 끌어내려 한다. 금성인은 수다나 남에게 하소연을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가 남녀간에 오해와 갈등의 씨앗이 된다.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 동굴 속으로 숨으려는 화성인의 심리에 대해 정확히 지적한 책 내용에 무척 공감을 했다. 그 당시 동굴로의 도피는 나에게 심각할 정도였으며 그로 인한 아내의 속 쓰림도 컸기 때문이다. 그 책을 통해 금성인을 원망하기 보다는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남녀의 차이를 강조한다. 마치 서로 다른 행성에서 진화해 온 생물처럼 화성인과 금성인은 언어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다.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사랑하는 방식과 패턴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진정한 이해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책은 말한다. 화성인과 금성인이 서로에게 끌리는 것은 그런 차이 때문이다. 마치 자석의 다른 극 사이에 인력이 작용하듯, 나와 대동소이한 존재라면 굳이 흥미를 느끼지도 못한다. 그리고 화성인이 화성인 같은 금성인을 찾으려한들 만나기도 어려울뿐더러 매력을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차이가 나중에는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성격상의 차이라고 말하는 것이 많은 경우 화성인은 금성인에 대한, 금성인은 화성인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특정 개인의 성향 탓이기 보다는 두 종족의 특성 차이에 기인한 것이 크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이런 화성인과 금성인의 특성 차이가 점차 엷어져 간다는 사실이다. 화성인과 금성인의 특성은 분명 성적인 에너지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성적 에너지가 가장 왕성한 시기가 바로 화성인은 가장 화성인답고, 금성인은 가장 금성인다운 때다. 그때는 이성(異性)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시기이다. 동시에 두 특성이 강하게 대립하고 부딪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중년의 나이를 넘기게 되면 그런 화성인과 금성인의 특질은 흐려져 간다. 화성인은 금성인을 닮아가고, 금성인 또한 화성인을 닮아간다. 그래서 두 종족은 교집합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며 새로운 단계의 사랑법으로 접어들게 된다. 억지로 이해하려는 의지 없이도 자연스레 이해가 되고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은 둘의 공통 영역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미운 정 고운 정이 가능한 배경에는 삶의 연륜과 함께 그것을 녹여낼 수 있는 닮은꼴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시기의 금성인은 동굴로 숨으려는 화성인을 연민의 눈으로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사춘기 전의 어린 시절도 화성인과 금성인의 구별은 그렇게 크지 않다. 그런 점에서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유년 시절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만물의 생성변화가 결국에는 어머니의 품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신(神)은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인생의 매 단계마다 그에 합당한 보물을 숨겨 두었다. 화성인과 금성인의 차이가 빛을 발하며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그러나 내 속에 점점 스며들어오는 금성인의 기질을 발견하며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다. 이젠 부분적이긴 하지만 금성인의 눈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때문이다. 새로 얻게 된 금성인의 눈은 내 시야를 넓혀주고, 전에는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해 주어서 기쁘다. 그것은 화성인으로서의 날카로웠던 젊었던 시절에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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